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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회 칼럼] 노벨상

기사승인 2017.10.17  16: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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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핵무기폐기국제운동(ICAN).

―전 세계인의 로망인 노벨상, 2017 ICAN 평화상 선정은 김정은과 트럼프에 대한 경고. 노벨은 ‘죽음의 상인’과 ‘위대한 인물’로 역사에 남아―

매년 10월이 되면 세계의 시선은 북 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있는 나라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과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로 쏠립니다. 이 때면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인 노벨상 수상자들의 이름이 발표되기 때문입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와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올해도 어김없이 생리의학상에 제프리 C홀, 마이클 로스배시, 마이클 영(3인 공동수상)이, 물리학상에 라이너 바이스, 배리 배리시, 킵손 (3인 공동수상), 화학상에 자크 듀보세(스위스), 요아힘 프랑크(미국), 리처드 헨더슨(영국), 경제학상에 리처드 세일러(미국), 문학상에 가즈오 이시구로(일본계 영국인), 평화상에 핵무기폐기 국제운동(ICAN)등 수상자를 모두 발표해 노벨상의 계절이 왔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노벨상은 다이너마이트 발명가인 스웨덴의 과학자 알프레드 노벨이 1895년 전 재산을 쾌척해 “인류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상을 준다”는 유언에 따라 1901년부터 매년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학·의학상, 문학상, 평화상이 수여된 것이 상의 효시입니다. 경제학상은 1968년 새로 추가한 상입니다.

1833년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알프레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1867년 거대한 재산을 모아 대부호가 됩니다. 그러나 자신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가 새 문명을 건설하는데 이바지하는 것은 기뻤으나 전쟁에 이용되어 많은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되는 것은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다이너마이트가 군사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싫어했던 노벨은 유산의 94%인 440만 달러를 사회 환원하기로 결심하고 노벨재단을 설립합니다.

노벨은 1896년 12월 10일 숨을 거두기 전 유명한 유언장을 남깁니다. 자기 재산에서 생기는 이자로 해마다 물리학, 화학, 생리학 및 의학, 문학, 평화의 다섯 부문에 걸쳐 공헌이 있는 사람에게 상을 주라는 것입니다. 이 유언에 따라 그의 유산은 스웨덴 과학아카데미에 기부되었고 그 기부금으로 사후 5년 뒤부터 노벨상이 시상되기 시작합니다.

노벨상은 매년 12월 10일 스웨덴 국왕이 직접 참석해 순금메달과 인증서를 수여하는데 이날은 바로 노벨이 죽은 날입니다. 노벨재단은 올해 노벨상 상금으로 각 분야 당 900만 크로나(12억 7000만원)를 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금년도 노벨상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평화상에 선정된  ‘핵무기폐기 국제운동(ICAN)’입니다. 북한의 핵 도발과 북미대립으로 한반도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있는 절체절명의 시점이라서 ICAN의 선정은 그만큼 의미가 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세계 100여 개국 비정부기구(NGO) 연합체인 ‘핵무기폐기 국제운동’은 2007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공식 출범했으며 한국에서도 ‘평화네트워크’ 등 시민단체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노벨위원회는 핵무기의 위험성에 대한 주의 환기와 핵무기 금지조약 체결을 위한 획기적 노력 등 성과를 들어 이 단체를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습니다.

노벨위원회는 “핵무기는 지구상의 모든 생명에 대한 끊임없는 위협”이라며 “그간 국제 사회는 지뢰와 집속탄, 화학 생화학 무기에 대한 금지협약을 도입했지만 핵무기는 이들 보다 더 파괴적임에도 국제법적 금지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노벨위원회는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핵무기 사용 위험이 큰 세계에 살고 있다. 어떤 국가들은 자신의 핵무기를 현대화 하려 하고 있고 북한 같은 더 많은 국가는 핵무장을 시도하고 있다”며 ‘핵무기폐기 국제운동’은 핵무기를 규탄하고 금지하고 제거하기 위해 모든 당사자가 협력할 것을 서약하는 인도주의 서약을 이끌었고 현재 108개국이 이 서약에 동의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외신들은 노벨위원회의 ‘핵무기폐기 국제운동’ 평화상 선정배경에 대해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은 물론 트럼프 미국대통령에 대한 경고성 의미가 있다”는 기사를 송신해 오고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한국은 2000년 오랜 민주화 투쟁과 남북한 긴장완화 공로로 김대중대통령이 평화상을 수상했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아직까지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화상 후보로 고은 시인이 몇 해 째 추천이 되고 그 외 일부 학자들이 후보로 거명이 될 뿐입니다.

노벨상의 대부분이 스톡홀름에서 선정되고 시상되는 것과 달리 평화상만을 오슬로에서 시상하는 것은 노르웨이가 스웨덴과 병합돼 있을 때 노벨이 평화상만은 노르웨이 위원회에 권한을 넘겨준데 따른 것입니다.

필자는 1996년 북유럽 여행 중 오슬로 시청의 노벨평화상 시상식장엘 들른 적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상을 주는 식장이라고는 하나 과거 우리나라 시골학교 강당이나 다름없는 매우 수수한 실내분위기에 놀랐는데 연설대 앞에 서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우리나라는 누가, 언제 이 자리에서 수상연설을 할 수 있을까”하고 한숨을 쉰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한국 사람이 노벨상을 타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과 같다”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4년 뒤 김대중대통령이 평화상을 받고 그 자리에서 연설을 하는 꿈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국내에서는 여러 가지 ‘뜬소문’이 나돌았습니다. “로비를 해서 탄상이다” “뇌물을 주고 탔다더라" 등등 별별 악성루머들이 마구 퍼졌습니다. 낯 뜨거운 작태였습니다. 그날 밤 오슬로 시내에서는 시민 500여명이 촛불을 들고 목숨을 걸고 독재와 싸운 아시아의 민주투사를 위해 축하행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노벨상 선정은 이미 여러 해 전부터 독일의 국회의원 90여명이 15년 동안 해마다 후보로 추천을 해 그해 결실을 보게 된 것입니다. 공로도 남북정상회담 보다는 목숨을 건 오랜 민주화투쟁이 주요업적이었습니다. 세계가 박수를 보낸 것은 그 때문입니다.

노벨위원회 위원장인 군나르 베르게는 “나는 김대중에게 노벨상을 주지 말라는 편지 수 천통을 받았다. 노벨상은 로비가 불가능하고 로비를 하려고 하면 더 엄정하게 심사한다. 한국인들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라고 증언했을 정도입니다.

엊그제 검찰의 발표를 보니 당시 이명박 정권이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 뒤 추모열기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 스웨덴 당국에 수상취소를 요청하는 공작을 했었다고 합니다. 당시 한나라당 일부 원외위원장들은 오슬로에까지 가서 김대중 노벨상 저지 시위를 하겠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로 최고령자는 미국의 레오니트 후르비치로 만 90세 3개월 21일로 2007년 경제학상을 받았고 최연소 수상자는 파키스탄의 말랄라 유사프자이로 만 17세 5개월 1일로 2014년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노벨은 역설과 모순으로 가득 찬 인물로 역사에 남아있습니다. 비상하면서도 고독하고, 비관주의자이면서도 한편으로 이상주의자였던 그는 현대전에 사용된 강력한 폭탄을 발명함으로써 ‘죽음의 상인’이라는 혹평을 듣고 있는가 하면 인류에 이바지한 지적인 업적에 수여하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을 제정함으로써 ‘위대한 인물’이라는 또 하나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노벨은 열아홉 살 때 외국유학도중 프랑스에서 한 소녀를 만나 사랑을 꽃피웠는데 불행하게도 그녀가 세상을 떠나  노벨은 그 상처로 평생 결혼을 하지 않고 1896년 이탈리아 산레모의 별장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김영회(언론인) yhk9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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