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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때란 없어요" 탕탕! 자동차 판매왕 겨냥한 금메달 총잡이

기사승인 2017.10.20  16:4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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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기 K퀸 출신 이상희씨 '국가대표 사격선수서 카마스터로' 인생2막 활짝

국가대표 사격선수 출신이었던 그녀, '평내의 심은하' 이상희씨는  이제는 카마스터로 또다른 날갯짓을 하고 있다. /하지영 기자(우먼센스) haphotostudio@naver.com

한때 알아주는 총잡이였다. 국내 여자사격 클레이 종목 간판스타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땄다. 탕탕탕!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표적이 총알을 맞고 산산이 부숴질때마다 인생은 거칠것 없어 보였다. 국가대표팀과 실업팀을 거친 뒤 짧은 지도자 생활을 했다. 그 후 아이를 낳고 전업주부로 살았다. 삶의 의욕이 떨어졌다. "한때 잘나가는 사람이었는데..."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터닝 포인트가 필요했다. 절실했다. 그래서 K퀸에 도전했다. "아 그래 나는 여자였지." 비록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진정한 나를 다시 찾았다. 매일매일이 신기하고 흥분됐다. 자신감이 생겼다. 내친김에 이번엔 자동차 마스터를 노크했다. 초반치고는 성적이 좋다. 주위에서도 실력을 인정해 기분이 좋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아임 해피다.

이상희씨의 40년 간단 프로필이다. 지난 13일 서울 신사동에서 만난 그녀의 미소는 맑고 밝았다. 환하게 눈웃음 지으며 웃는 모습이 마치 심은하를 닮았다. 깔끔한 바지 정장 차림에서 느껴지는 프로의 포스도 장난이 아니다. 자동차 판매왕이라는 새 타깃을 겨냥한 금메달 총잡이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 아버지 암으로 돌아가신 후 딴 눈물의 금메달

"중학교 2학년때 처음 총을 잡았어요. 공중으로 날아가는 접시를 산탄총으로 쏘아 맞히면 짜릿짜릿했죠. 총 무게가 3.7kg인데 오래들고 있으면 팔이 뻐근해요. 항상 어깨와 허리까지 부담이 전달돼 힘든 종목이에요."

사격 선수는 총만 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바깥에서 무거운 총을 들고 집중해서 연습하기 때문에 몸이 욱신욱신 늘 잔병을 달고 살았다. 사격은 스포츠의 3D 종목 중 하나란다. 소질이 있었나보다. 서서히 두각을 나타냈고, 크고 작은 대회에서 이름을 알렸다.

그녀는 경주가 고향이다. 대학은 꼭 서울로 가고 싶었다. 부모님과 함께 '인 서울' 방법을 궁리해보니 체육 종목 중에서 사격을 선택하면 그나마 서울 입성의 꿈을 이룰 수 있겠다라고 결론내렸다. 그래서 올인했다. 그때부터 이 악물고 열심히 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동덕여자대학교에 간 것은 물론이고 2002년도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상희씨의 금메달에는 눈물 어린 사연이 있다. 아시안 게임을 앞두고 아버지의 암이 악화됐다. 2002년 6월에 결혼을 했는데 웨딩마치 후 3개월 정도가 안되어 8월에 돌아가셨다. 세상이 전부 내려앉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버지는 제게 최고의 후원자이자 조력자였어요. 당연히 슬픔은 엄청났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주변에서는 선수로 나가서 메달이나 딸지 모르겠다는 수군거림도 들렸어요. 오기가 발동하더라고요. 아버지 영정에 금메달을 바치겠다는 각오로 다시 마음을 다잡았어요."  

그해 10월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죽기살기 노력한 결과 120점 만점에 111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어느 정도로 집중을 했냐면, 접시가 원래 쏜살같이 날아가는데 그 짧은 순간에 마치 접시가 천천히 공중에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단다. 하늘나라 아버지께 금빛 영광을 바치면서 펑펑 눈물을 쏟았다. 

◆ 마감 3시간 전에 사진 고르고 이력서 보내 5기 K퀸 본선진출

처음엔 태극마크와 금메달 효과가 통했다. 일반 실업팀으로 옮겨 계속 선수 생활을 연장했고 그 후엔 후배를 양성하는 일을 했다. 그러나 사격이라는 종목의 특성상 배우려는 학생이 적었고 또 배우는 비용이 만만찮아 선뜻 선택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일이 눈에 띄게 줄었다. 곧 나아 지겠지 하다가 훌쩍 몇년이 지났다. 시간은 또 우리를 무기력하게도 만든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게 아무렇지도 않은 상황이 됐다. 그냥 쉬는게 오히려 더 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결국 슬슬 걱정이 밀려왔다. "도대체 나는 뭐야."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혔다.

그때 운명처럼 지난해 K퀸이 다가왔다. 아는 언니가 우연히 "우먼센스에서 주최하는 K퀸이라는 대회가 있는데 한번 해보지 그래? 너라면 국가대표 경력도 있고 재미있을 거 같은데"라며 출전을 권유했다. 이것저것 따졌으면 행운은 멀리 도망갔을 것이다. 귀신에 홀린 듯 그 말을 듣고 마감 3시간 전에 부랴부랴 사진을 고르고 이력서를 써서 접수했다.

"크게 기대는 안했죠. '설마 내가 될까, 에이 예쁜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게 솔직한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예상은 빗나갔어요. 80명 안에 들었고 다시 20명 안에 들어 본선에 진출했어요. 미리 준비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죠. 합격 결과를 통보 받은 뒤, 그제서야 장기자랑과 의상 등을 서둘러 준비했어요."

그래도 명색이 금메달 총잡이 아닌가. 장기자랑으로 007음악에 맞춰 총을 들고 사격하는 포즈를 취했다. 참신했다. 반응이 좋았다.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이상희씨는 5기 K퀸을 계기로 '내가 여자였구나'라는 너무나 당연한, 하지만 정작 잊고 살았던 사실을 깨우쳤다. 1남1녀를 낳고 엄마로 그리고 주부로 지내면서 사실 화장도 잘 안하고 옷도 갖추어입지 않는 생활을 했다. 모든 다른 대한민국의 엄마와 주부처럼.

"본선에 진출하면서 마치 신데렐라가 된 듯한 느낌이었어요. 무릎 나온 트레이닝복에 목 늘어진 티셔츠만 입다가 드레스를 입어보니 감동이었죠. 눈물도 핑 돌았어요. 여기저기에서 카메라가 찰칵 거리면서 나를 찍어주고 그 사진이 보도되면서 정말로 기분이 좋았어요."

국가대표 사격선수 출신이었던 그녀, '평내의 심은하' 이상희씨는 이제 카마스터로  또다른 날갯짓을 하고 있다. /하지영 기자(우먼센스) haphotostudio@naver.com

◆ 맨땅 헤딩하듯 무한도전 영업... 사번이 나오면 차 10대 팔 자신있어

콘테스트 경험을 토대로 자신감을 찾은 이상희씨는 K퀸에서 정말로 다양한 친구를 만나게 되면서 나도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두들 모델, 홈쇼핑 쇼호스트, 강사 등 다양한 직업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집에만 있지 말고 '잡'을 찾아보자라고 결심했다.

마침 아는 언니가 자동차 회사의 카마스터로 일하고 있었는데 "너도 해보지 그래? 카마스터하면 시간도 좀 여유있게 쓸 수 있어. 너 사람 만나는거 좋아하고 활발하잖아. 그걸 활용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라는 말에 무작정 집 근처인 남양주시의 한 자동차 대리점에 전화를 했다. 

그러나 취직이 어디 그리 쉬운가. 단박에 대리점에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포기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서 다시 전화를 걸어 한번 서류를 접수하고 면접이라도 봐주시면 안되는지 물었다. 대답은 또 거절이었다. 며칠 후 다시 한번 전화를 해서 정말로 일을 하고 싶은데 그래도 안되겠냐고 묻자 이번에는 한 번 면접은 보러 오라는 말을 들었다.

대리점 사장님은 나중에 그녀에게 "그 날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한 것은 직접 만나 거절할 셈이었다"고 말했다는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를 몰랐던 그는 당당하게 면접을 보러 갔고 "정말로 일이 필요하고 열심히 하겠다"면서 굳은 의지를 보였다.

2주가 지났을까, 그럼 한 번 대리점에 와서 수습으로 일을 해보라는 통지를 받았다. 야호 소리를 질렀다. 3개월이 지나고 판촉을 다녔는데 말이 판촉이지 아무 연고도 없는 모르는 가게에 웃으면서 인사하고 들어가 "안녕하세요 새로 온 직원입니다. 좋은 차가 나왔는데 한 번 봐주세요"라면서 맨땅에 헤딩하듯 일했다.

"가게에 들어오지 말고 나가"라는 핀잔도 들으면서 수모도 많이 겪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뱉는다는 말처럼 웃으면서 반갑게 행동하니 그럼 팸플릿은 두고 가라면서 점점 상황이 좋아졌다. 올 10월 그는 일한지 6개월에 접어들었는데 아직 사번이 나오지 않아서 차는 못팔고 있지만 구매하겠다는 고객들이 끊이지 않아서 고객들이 현재 사번을 기다리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사번이 나오는 날 차를 10대 이상 계약할 자신이 있다면서 활짝 웃었다.

◆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때...일을 해야 오히려 더 행복

이상희씨는 여성은 반드시 일을 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냥 주부로 엄마로 살 때는 일을 하면 가정에 소홀해지지 않을까, 엄마로 미안하지 않을까라면서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고 한다.

"돈을 버니까 엄마로서 아들 딸에게 옷이라도 사줄 수 있고, 학원비도 댈 수있고, 어디 여행갈까라는 말도 입에서 나오는 것을 보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전에는 어떻게 하면 돈을 아끼고 어디를 덜 쓸까만 걱정했던 것에서 '우리 머리 식히고 여행도 가자'라는 말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라기도 해요.(웃음)"

그는 여성들이 가정에서 나오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말했다. "자격증도 하나 없는데 어디 되겠어" 또는 "너무 늦었어 나는 안되겠지"라고 스스로 비하하기 쉬운데 막상 일을 하러 나오니 필수 조건이나 늦은 때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40세가 넘어서 카마스터도 하고 어디 화보를 찍거나 할 때 모델로도 잠시 활동하는데 나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세상에 나설 때 필요한 것은 오직 자신감이라고 했다. 세상이 다 열려있었는데 자신만 갖혀서 방문을 닫고 살았다면서 K퀸대회를 거치면서 나도 더 예뻐지고 더 당당해질 수 있다는 용기를 가졌다고 했다.

이제 이상희씨는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일을 하세요, 일을 하면 자아 존중감도 더 생기고 자신감이 늘어요. 자녀들도 집에만 있는 모습보다 밖에서 엄마가 일을 하자  더 존경해요." 그녀는 훨훨 날갯짓을 하며 세상을 날고 있다.    

 

양혜원 기자 moneyss@seoulmedia.co.kr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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