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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페치카가 불붙인 '광복의 난로' 노래로 전파하는 K문화독립군 부부

기사승인 2018.02.28  11: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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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세페김·구미꼬김, 안중근 의거 지원한 최재형 선생 일대기 다룬 뮤지컬 제작

주세페김·구미꼬김 부부가 "문화독립군이 되어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애국정신을 전하겠다"며 뮤지컬 '페치카' 제작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하지영 기자(우먼센스) haphotostudio@naver.com

"안중근은 알아도 하얼빈 의거를 뒤에서 지원한 최재형 선생을 기억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죠. 그래서 선생의 나라사랑 마음을 꼭 널리 전파하고 싶어요."

이름도 특이한 '주세페김'과 '구미꼬김' 부부는 요즘 시쳇말로 최재형에 꽂혔다. 노비의 아들로 태어나 조국 광복에 목숨과 재산을 모두 바친 '파란만장 60년'은 감동 그 자체다. 

두 사람은 선생의 일대기를 뮤지컬로 만들고 있다. 타이틀은 '페치카. 남편 주세페김이 작곡·편곡을 맡았고 소프라노인 아내 구미꼬김이 배우로 힘을 보태고 있다. 지난해 11월에 이미 만든 몇개의 노래를 선보이는 쇼케이스를 열었고 올해 뮤지컬을 완성할 계획이다. 

제99주년 3·1절을 며칠 앞두고 서울 용산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두 사람은 천생 '애국커플'이다. 명함을 건네자마자 대뜸 최재형을 아느냐고 물었다. 

솔직히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처음 알게됐고 이것저것 찾아봤는데 기록이 많지 않아 애를 먹었다고 답하자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뮤지컬로 최재형 선생을 알리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우리가 잊고 살았던 역사의 파노라마가 3시간 넘게 펼쳐졌다.

◆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지원...오랫동안 잊혀졌던 이름 최재형

주세페김·구미꼬김 부부가 "문화독립군이 되어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애국정신을 전하겠다"며 뮤지컬 '페치카' 제작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  /하지영 기자(우먼센스) haphotostudio@naver.com

최재형(1860-1920) 선생은 노비 아버지와 기생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평생을 천출이라는 꼬리표가 붙었지만 당당하게 극복했다. 아홉살때 부모를 따라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했다. 지독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열한살에 집을 나왔다. 러시아 상선을 탄 그는 선장의 배려로 6년간 두번의 세계일주를 한다. 말이 세계일주지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고단한 노동이었다. 그래도 그 덕에 세계의 견문을 익히고 근대 교육을 받았다. 각고의 고생 끝에 군수사업으로 큰 돈을 벌었고 오늘날의 군수 격인 도헌의 자리에 올랐다. 이후 배 부르고 등 따스한 인생을 아낌없이 버리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한인 마을에 학교를 세우고 장학금을 주었다.

당시 한인들을 보호해주는 따뜻한 난로라는 뜻에서 그는 '최 페치카'라고 불렸다. 그의 인품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애칭이다.

조국의 운명이 기울어진 뒤에는 독립운동, 특히 무장투쟁의 정신적 지주이자 자금원으로 활약했다. 의병활동을 지원하고 신문을 만들어 일제를 규탄했다. 임시정부 수립에도 재산을 쏟아 부었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1909년)도 선생의 역할이 컸다.

마지막은 비극이었다. 볼셰비키 혁명(1917년) 이후 인민재판 대상자가 되어 쫓기다가 4월 참변(1920년) 때 가족을 위해 투항한 후 이송 도중 탈출하다가 순국했다. 안타깝게도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주세페김과 구미꼬김이 최재형을 처음 알게된 건 2013년도다. 주세페김은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인 조마리아 여사가 옥중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소재로 '아들아 아들아'(이윤옥 시)라는 곡을 발표했다. 이 노래를 만들면서 최재형의 드라마틱한 삶을 알게됐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는 선생의 도움 덕에 가능했어요. 안 의사가 거사 전에 머문 곳이 바로 선생의 집이었죠. 하얼빈역을 뒤흔든 8연발 권총도 역시 선생이 사주었어요. 선생의 딸인 올가는 후에 '어떤 사람이 우리집 벽에 사람 셋을 그려놓고 사격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안중근 이었다'고 증언하기도 했죠."

망해가는 조국을 그냥 볼 수 없었다. 부와 명예를 모두 바쳤다. 광복을 위해 가장 고귀한 일을 했으나 정작 선생의 삶은 조명받지 못했다. 그의 항일투쟁이 러시아와 연계됐다는 점 때문에 오랫동안 이름 석자는 잊혀졌다. 대한민국 역사의 가슴 아픈 한 단면이다.

주세페김은 "대한독립을 위해 뜨거운 열정을 불태운 최재형 선생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무척 안타까웠다"면서 "뮤지컬을 통해 안중근 의거를 지원한 선생의 삶이 제대로 평가받았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생은 요즘 말로 흙수저 중의 흙수저였다"면서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 영웅으로 죽은 선생의 삶은 꼭 역사가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저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사람" 세상과 당당히 맞선 구미꼬김

주세페김·구미꼬김 부부가 지난해 11월 '페치카' 쇼케이스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제공=주세페김·구미꼬김

구미꼬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본식 느낌을 주는 이름 때문에 '혹시 일본인'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았느냐고. 질문을 하면서도 솔직히 마음 한구석엔 '일본인 아닌가'라는 의심도 들었다. 돌아온 대답은 거침이 없다. 환하게 웃으면서 "저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사람입니다"라며 가족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어머니는 일본 사람입니다. 일본에서 태어나자마자 '구미꼬'라는 이름을 얻었죠. 7세때 한국으로 왔습니다. 그 당시엔 일본인에 대한 시선이 여전히 따가웠기 때문에 '한국인 아빠와 일본인 엄마'를 숨기면서 살았어요. 학교에서도 '김구미'라는 이름을 썼습니다. 초중고등학교를 모두 한국에서 다녀 자연스럽게 섞일 수 있었지만, 간혹 친구들이 집으로 전화했을 때 '너희 엄마 한국말 좀 이상하게 하더라'라는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습니다."

그래서 버릇이 생겼다. 너무 잘나지도 않고 그렇다고 또 너무 못나지도 않는 '중간의 삶'을 살려고 애썼다. 혹시나 자신이 너무 튈 경우에는 어머니가 일본인이라는 점이 알려질까봐 숨기고 싶었다. 이런 엄청난 콤플렉스는 한참동안 수동적인 삶을 사는데 영향을 미쳤다.

지독한 가슴앓이는 이탈리아에서 남편을 만나면서 치유됐다. 그때까지 출생의 비밀을 밝히는게 왠지 껄끄러운 일이라고 여기며 살았지만, 남편을 만나면서 당당하게 구미꼬라는 이름을 드러냈다.

구미꼬김은 "사실 남편이 많은 용기를 주었어요. 있는 그대로 저 자신을 받아들이기로 마음 먹게 된 점이 참 고마워요"라며 옆에 있는 주세페김의 손을 지그시 잡는다. 

◆ "처음엔 비호감이었어요" 이탈리아 유학 중 만난 부부

주세페김·구미꼬김 부부가 지난해 11월 '페치카' 쇼케이스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제공=주세페김·구미꼬김

주세페김은 성균관대 경상대학 산업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대한민국 최고기업의 인턴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누나가 성악가여서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클래식 음악을 즐겼다. 당시 경영심리라는 것이 유행했는데 이 학문에 예술과 음악이 막 도입되어 융합되던 시기였다. 그래서 다시 경원대학교 음악학과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했고 유학을 떠났다.

이탈리아에 온지 4~5년쯤 지나 두 사람은 음악 아카데미에서 처음 만났다. 구미꼬김은 성악을 전공한 후 유학을 왔는데 사실 서로를 처음부터 마음에 두진 않았다.

주세페김은 군대를 다녀온 후 29세에 유학을 온 것이어서 얼른 공부를 마쳐야 한다는 압박감에 연애에 한눈 팔 여유가 없었다. 구미꼬김은 주세페김이 '과수석을 했다' '공부를 잘한다'는 등 잘난 척을 너무 많이해 비호감이었다며 웃었다.

어느날 성악 레슨을 해주던 음대 교수가 구미꼬김에게 "네가 부르는 노래는 아름답지만 감성이 안느껴진다"면서 "차라리 종교음악으로 방향을 틀으라"고 뼈아픈 충고를 했다. 그러면서 "그게 싫으면 사랑에 빠져서 노래를 해보든지"라며 쓴소리를 내뱉었다. 울컥했다. 분했다. 그래 남자를 만나보자. 갑자기 데이트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 때 옆에 있던 사람이 바로 주세페김이었다.

구미꼬김이 용감하게 고백했다. "나랑 사귀어 볼래요." 주세페김도 그 말이 싫지 않았다. "그래요." 11월 중순께부터 만나기 시작해 다음해 2월 결혼이 결정되고 4월 초에 웨딩마치를 울렸다. 시큰둥했던 눈길에 불이 붙으니 단 5개월만에 속전속결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같이 음악을 하니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을 것 같다는 질문에 구미꼬김은 "사실 신비감이 없다(웃음)"면서도 "서로를 정말 잘 이해할 수 있고 말하지 않아도 헤아릴 수 있으니 그것은 최고다"라고 했다. 

주세페김은 완전 '아내 바라기' 사랑꾼이다. 그는 "아예 아내의 단점 같은 건 보지도 않고 신경도 안쓴다. 같이하면 편하고 부담이 없다"라면서 "그리고 싸워봤자 얻을게 없으니 저는 무조건 부인의 말에 따른다"면서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 국적 떠나 나라 사랑하는 마음 똑같아…안중근 어머니의 모정으로 노래

문화독립군이 되어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의 애국정신을 전하겠다는 구미꼬김과 주세페김의 열정은 뜨겁다. 사진은 페치카 쇼케이스 공연 모습. /사진제공=주세페김·구미꼬김

구미꼬김은 '페치카'에 나오는 노래 가운데 가장 마음을 사로 잡은 곡이 '아들아 아들아'라고 했다.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재판과정에서 아들이 비굴하게 항소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다. 안중근의 이름이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은 바로 이런 어머니의 의연한 마음 때문이리라. 

"아들아 옥중의 아들아 / 목숨이 경각인 아들아 / 칼이든 총이든 / 당당히 받아라 / 이 어미 밤새 네 수의 지으며 / 결코 울지 않았다 / 사나이 세상에 태어나 / 조국 위해 싸우다 죽는 것 / 그보다 더한 영광 없을지어니 / 비굴치 말고 / 당당히 생을 마감하라 / 하늘님 거기 계셔 / 내 아들 거두고 / 이 늙은 에미 뒤쫓는 날 / 빛 찾은 조국의 / 푸른 하늘 새 되어 / 다시 만나자"

구미꼬김은 자신도 고등학교 1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인 두 아들을 둔 엄마여서 그런지 부를때마다 마음에 와닿는다고 했다. 같은 여성으로서 그 귀한 아들을 조국독립에 과연 바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절절해진다고 말했다.

"몇몇 일본인들은 이 노래를 들으면서 감동받아 운적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어요. 국적을 떠나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는 마음에 깊이 공감한 겁니다. 이 노래는 특별히 진심을 다해 부릅니다. 정말로 그 순간 저는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인 조마리아입니다."

'페치카'에는 이밖에도 이상백 시인이 노랫말을 쓰고 주세페김이 선율을 붙인 '오마니' '나타샤의 기도' '누가 끝을 보았나' '다시 함께 달려가요' '나 다시 살아' 등의 노래가 나온다. 또한 '그리운 나무(정희성 시)' '삶이 그댈 속일지라도(푸쉬킨 시)' '돈키호테의 꿈(세르반테스 시)'도 지나해 쇼케이스에서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 문화독립군  되어 최재형 선생 애국정신을 알리는 게 꿈

주세페김·구미꼬김 부부가 지난해 11월 '페치카' 쇼케이스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제공=주세페김·구미꼬김

"요즘 유명하다는 뷔페식당을 가보면 양식, 중식, 일식, 이탈리아식은 기본이고 인도와 터키 음식까지 즐비합니다. 다양한 음식을 맛볼수 있어 정말 좋기는 한데, 만약 한식만 빠져 있다면 어떨까요? 속이 상하겠죠. 최근 한국에서 유행하는 팝페라 음악장르에서도 그런 아쉬움이 보입니다. 외국 노래로 일관된 '한식만 쏙 빠진 뷔페' 꼴이죠. 신토불이가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외국 문화가 우선되어온 잘못된 풍토를 바꿔 보고 싶어요. '메이드 인 코리아 K문화 밥상'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주세페김과 구미꼬김은 'K문화독립군'이다. 한국적 가치를 바로 세워 세계에 알리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문화 독립을 통한 문화 광복이 이들의 모토다. 두 사람은 "문화 독립이란 외국 문화의 범람 속에서 우리 민족의 혼을 공연에 담는 것이다"라며 "한국의 역사를 토대로 가장 한국적인 공연을 하는 것이 곧 문화 광복을 향한 길이다"라고 설명했다.

부부는 이탈리아에서 유학할 때만 해도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외국인이 많았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의 K팝이 세계를 사로잡고 있다면서 "이제는 한국의 숨겨진 독립운동의 역사가 K팝처럼 널리 알려질 때가 됐다"고 말했다. 한국의 역사와 문학 그리고 철학의 깊이를 알리고 싶다고 했다. K팝처럼 세계가 사랑하는 '페치카' 공연을 만들어 수출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부부는 올해도 몇차례 갈라콘서트를 연다. 아직 '페치카' 전곡이 완성되지 못해 주요 레퍼토리만을 뽑아 무대에 올린다. 큰 공연, 작은 공연 가리지 않고 최재형 선생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주세페김은 "아무래도 최재형 선생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보니 후원자도 적고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부분이 있다"면서 "아주 멋지고 큰 대형극장에서 공연을 하고 싶지만 현실이 만만치가 않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갈라콘서트 티켓은 학교와 청소년 단체 등에 적극 제공하고 있다. 저녁공연은 유료로 하더라도 낮공연은 무료로 초대해 청소년들이 뮤지컬을 통해 숨겨진 역사를 알게 하겠다는 포부다.

두 사람은 올해 뮤지컬 '페치카'를 완성해 대형극장에 올리고 내년엔 전국 순회공연을 하는게 꿈이다. 최재형 선생이 1920년에 돌아가셨으니 2020년이 순국 100주기며 또 한러수교 30주년이기도 하다. 이를 기념해 러시아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부부는 "역사를 원래 강의로 배우면 재미가 없거나 거부감이 생기는데 공연은 가슴으로 배우는 묘미가 있다"면서 "실제 갈라콘서트를 본 청소년들은 '나라의 소중함을 느끼게 됐다'면서 큰 만족감을 보인다"고 말했다.

다가오는 4월7일은 최재형 선생의 순국일이고 또 8월15일 광복절은 최재형 선생의 탄신일이다. 암흑의 시기에 최 페치카가 광복의 난로를 피웠다면, 주세페김과 구미꼬김은 그 난로의 온기를 세상에 전하고 있다. 음악으로 독립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2020년 세계에 울려퍼질 뮤지컬 '페치카'를 기대한다.

양혜원 기자 yhwred@naver.com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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