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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장길 칼럼] 2018년 3월의 밤, 종로에서

기사승인 2018.03.19  10: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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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분노와 희망을 모아 폭발한 3·1운동이 내년에 100주년을 맞지만 이를 기념하는 탑골공원에서도 그 정신은 흐릿하기만 하다. /여성경제신문 자료사진

이슥한 겨울밤에 종로 거리를 걷는다. 자정이 두어 시간 앞인데 아직 주위는 가로등과 가게 조명, 차량 불빛으로 환하다. 자동차는 8차로 넓은 도로 위로 줄을 이어 달리고, 버스는 들어오고 나가며 계주를 이어간다. 찬바람이 건물 사이에서 몰려나와 볼을 때리고, 콧속도 맹맹하게 얼린다. 하루의 일을 마친 귀갓길들, 팔장을 낀 젊은 남녀, 술 기운이 거나한 취객들, 모임의 해산이 아쉬운 목소리들로 제법 분주하다. 종로의 거리는 긴 하루를 마감하려고 천천히 서두르며 저물어가고 있다.

변화는 언제 어디서나 안정보다 드세어서 세월이 흐르면 옛것은 저만치 밀려 있게 마련이다. 종로가 그 바람을 가장 세게 맞은 곳 중의 하나다. 정도전의 한양 설계로 설치된 육의전까지 복기하지 않더라도 조선시대 특산품이 모이던 곳, 일제 강점기 문물 유입의 중심지, 그리고 현대화의 물결이 서울을 덮치면서 상업과 문화를 선도하던 면모는 시류에 따라 부단히 바뀌었다. 건물들은 키 자랑하듯 높아지고, 길도 반듯반듯 오지랖을 넓혔으며, 업종들도 세태를 따라 눈치껏 달라졌다. 수많은 종류의 업소들 중에 금·은방과 화장품점, 학원, 음식점, 커피점, 의료기상, 그리고 새로 등장한 휴대전화 가게 등이 두드러지게 보인다. 그 사이사이에  보신각과 탑골공원, 종묘와 같은 고색창연한 유적이 날랜 현대문화에 치어 외롭다. 

도로 한가운데 버스정류장에는 모였다가 흩어지고 또 모이는 기다림의 순환이 꾸준하다. 어깨를 움츠린 중늙은이, 시린 발을 구르는 아낙네, 핸드폰에 열중인 젊은이의 모습이 모자이크를 그려낸다. 일에 지친 듯, 시간에 쫓기는 듯, 무슨 생각에 젖은 듯 저마다 추운 늦저녁의 쓸쓸함을 두르고 서 있다가 어디로인가 사라진다.

원래 버스길은 반 세기 전까지는 전차가 다니던 궤도 아니던가. 고종황제가 시해당한 명성황후의 묘소인 홍릉을  왕래하려고 서대문~청량리의 첫 전차 노선을 건설했다고 알려져 있다. 남의 나라 야욕의 하수였던 낭인들에 의해 선혈이 낭자하게 난자돼  불태워진 황후, 가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크게 의지했던 반려를 그토록 처참하게 앗긴 통한이 어떠했으랴. 전차는 69년 동안 애용되다가 자동차의 범람에 밀려 1968년에 퇴출됐지만, 민족에게 전염된 고종의 울분과 처연함은 역사로 남아 도로 아래에 깔려 있을 터이다.

“吾等(우리)은 慈(이)에 我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 탑골공원의 고적한 어둠 속 비문에 새겨진 3·1독립선언문은 글자 한자한자가 힘이 있고 결연하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함성도 석심(石心)에까지 깊이 스며들었을 것이다. 이에 서명한 33인의 분기탱천했던 영령(英靈)들은 어느 어두운 구석에서 떨고 있을까? 탑골공원의 밤은 그늘지고 을씨년스러워서 귀신이 나올 듯이 으스스하기만 하다. 온 반도에서 들불처럼 일어나 겪은 희생과 고초는 세월과 변화마저 고절(苦節)하게 이겨내며, 민족혼을 형형(炯炯)하게 지킬 줄 알았다. 그러나 내년에 100년이 되도록 해마다 형식적인 기념식이 열린 게 고작이고 그 정신이 나라의 핏줄로, 기상으로, 뭉치는 힘으로 체화돼 있다고 믿기지 않는다. 3·1운동 뒤 계속된 정세의 혼미 속에서 사회의 기개가 곧고 뚜렸하지 않으니 남과 북으로 갈리고, 남쪽에서도 또 갈려 으르렁거린다. 민족의 분노와 희망을 모아 폭발한  3·1정신은 탑골공원에서도 흐릿하다.  

선각자들의 얼을 되뇌며 내친김에 차거운 발길을 더 옮겨본다. 서울 YMCA 건물은 지상 8층 지하 1 층의 반듯한 자세로 여전히 의젓하다. 그러나 더 높이 올라간 주변의 고층건물들에 눌려 예전의 위용은 사그라지고 그저 그만그만하다. 건물 안에도 시설은 낡았고, 1971년  민주수호선언의 흔적도 희미하다. 64인 지식인선언의 결기가 민주화의 물결을 촉발시키는데 일조했지만, 그들을 내세웠던 상황과 주역들이 주창한 자유롭고 공정한 사회건설의 도정(道程)은 아직도 가물거린다. 민주를 표방하는 조직과 단체들은 정치성에 물들고, 정치는 대의(大義) 대신에 이기주의와 파당주의의 진창에서 각축한다. 고매한 정신은 아련하고 오염된 행동들이 판치니 선지자들의 맑고 장렬했던 족적을 더듬는 일은  누항(陋巷)에서 선계(仙界)를 꿈꾸는 꼴인가.

YMCA 지하다방과 길 건너 여왕봉 다방, 음악감상실 르네상스 등은 젊은이들의 행아웃이었고, 아지트였다. 거기 가면 또래들을 만날 수 있었고 모여서 웃고, 떠들고, 논쟁을 벌이고, 예민하고 미묘한 사랑을 더듬이질 하다가 헤어졌다. 

싱그럽던 그 에너지들이 성장하고 모여져 뻔쩍거리는 건물들을 하늘 높이 올렸고, 움츠렸던 시민들의 활개를 펴주었다. 전통문화에서 현대문화로 넘어가는 삐걱거림도 가정과 사회에서 아프게 견뎌냈다. 한 세대의 희로애락이 들끓던, 별로 특별하지 않지만 젊음을 품어주던 추억의 명소들은 자취조차 찾을 길 없다. 그 세대의 열정도 가물가물하다. 바톤 터치는 잘 되었는지 선배들의 노파심은 가실 줄 모른다.

학창시절 어느날 강의시간에 늦을새라 질러간다고 종묘 옆 좁은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풍문이 자자하던 종삼 홍등가였다. 아가씨들이 야한 옷차림으로 껌을 씹으며 무리지어 앉아있다가 얼른 접근하며 옷깃을 끌어당겼다. 말을 섞을 겨를이 없어 뿌리치며 걸음을 재촉하자 육두문자가 날아왔다. 주위가 소란해지자 불량해 보이는 더벅머리가 안에서 뛰쳐 나오더니 폭력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다툴 형편이 아니라는 판단에 학생은 시비를 가릴 겨를도 없이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전후에 먹을 것도, 입을 것도 궁했던 시절 나락으로 떨어진 처참한 삶의 한 현장이었다. 그 아프고 일그러진 영혼들은 지금 어디를 떠돌고 있을까? 어떤 모양으로 변했을까? 살아 있을까, 아니면 세상을 저주하며 영원으로 떠나고 말았을까? 

종묘 주변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계기로 정화가 이뤄졌다. 종묘의 정문 앞에는 잘 정돈된 공원이 조성돼 있고, 돌담 옆 골목도 좁은 대로 정비됐다. 서순라길을 따라 봉익동과 묘동, 권농동 일대에는 종로 3가에서 뻗은 소규모 금·은 보석상들이 점점이 늘어서 있고, 그 배후의 이면도로 주변에는 영세 보석세공 작업장들이 다닥다닥 박혀있다. 밀집해 있던 니나노 술집은 사라졌지만 값싼 대중음식점의 오래된 지붕과 처마, 문짝은 아직도 궁색의 고달픔을 시름하며 남루하다.  

종로의 밤은 하릴없이 깊어가고 있다. 오랜만에 둘러본 종로의 영상들이 혼곤한 뇌리를 엄습한다. 옛 흔적들은 역사를 관통하며 세상의 맥락을 짚어준다. 맥락은 민본들의 삶과 우주의 본질에도 닿아있다. 스피노자의 긍정적인 명언을 패러디한 노래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종로에 사과나무를 심자”는 가사가 환청으로 울린다. 종로에 머물렀던 영혼들이 떠돌며 목 놓아 외치는 절규로도 들린다.

송장길(언론인·수필가) womaneconom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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