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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회 칼럼] 이명박의 엘레지

기사승인 2018.03.20  10: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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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수수·횡령·조세포탈 등 혐의를 받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자료사진

―어릴 때 꿈이 선생님, 소방관이 꿈이었다는 그. 한데 욕심이 너무 과했습니다.  또 한사람의 전직 대통령이 법 앞에 서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탐욕을 생각합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운명이 일생일대 위기에 처했습니다. 마치 바람 앞의 촛불, 풍전등화의 형국입니다.

맨땅을 짚고 일어나 기적 같은 성공신화를 일궈 젊은이들의 신화적 우상이었던 그 이름 석 자 ‘이명박’이 절체절명에 처한 것입니다. “사람의 운명은 여러 번 바뀐다”는 속설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옛날 중국의 북방 변경(邊境)에 한 노인이 암말(馬) 한 마리를 기르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말이 집을 나가 오랑캐 땅으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소문을 듣고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위로했습니다. “안됐소. 큰 재산인데….” 그러나 노인은 “할 수 없지. 제 발로 나간 걸 어찌 하겠소”하고 크게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난 뒤 뜻밖에도 달아났던 말이 돌아 왔습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고 잘 생긴 수놈을 한 마리 데리고요. 횡재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다시 몰려 와 축하했습니다. “아, 참 다행이오.” 노인은 대꾸합니다. “알 수 있소? 또 무슨 일이 생길지….” 아니나 다를까, 노인의 아들이 수말을 타고 마구 달리다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또 몰려와 위로했습니다. 노인은 다시 말했습니다. “괜찮소. 앞일을 누가 알겠소? 두고 봐야지.”

그런데 그때 마침 난리가 나 마을 청년들이 모두 전쟁터로 끌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노인의 아들만은 다친 덕에 전쟁에도 나가지 않았고 목숨도 무사했습니다. 화가 복이 되고, 복이 화가 된다는 이 유명한 고사는 중국 한(漢)나라 때 회남왕 유안(劉安)이 쓴 ‘회남자(淮南子)’의 ‘인간훈(人間訓)에 나오는 일화, ‘인간만사새옹지마(人間萬事塞翁之馬)’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사람들은 누구나 길흉화복(吉凶禍福), 온갖 일을 경험합니다. 어느 때는 생각지도 않은 좋은 일이 생기기도 하고 어느 때는 뜻밖의 궂은일을 만나기도 합니다. 좋은 일이 생기면 기뻐하고 궂은일을 당하면 슬퍼합니다. 일희일비(一喜一悲), 그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요, 인간사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좋은 일에는 반드시 나쁜 일이 뒤 따른다는 점입니다. 호사다마(好事多魔)가 바로 그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옛날 어진 이들은 좋은 것을 좋다고 하지 않았고 더욱 몸가짐을 낮춰 자신을 경계했습니다. 하지만 소인(小人)들은 많은 시간이 지난 다음 비로소 세상의 오묘한 이치를 깨닫곤 합니다. 그리고 후회합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차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습니다. 광복과 함께 부모 등에 업혀 귀국한 그는 경북 포항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시장에서 야채장사를 하던 어머니를 도와 무거운 아이스케키통을 메고 거리를 누비며 중학교 시절을 보낸 그는 전교 2등을 할 만큼 명석했지만 성냥팔이, 김밥장수로 살림을 도울 수밖에 없었고 단칸방에서 하루 두 끼를 술지게미로 연명 했습니다.

고등학교에 갈 형편은 아니었지만 담임선생님의 도움으로 상고 야간부에 들어가 낮에는 수레를 끌고 다니며 뻥튀기 행상으로 살림을 도왔습니다. 고교를 졸업한 뒤 서울로 올라온 그는 헌책방에서 구한 책으로 공부해 고려대학에 입학합니다. 어머니가 좌판을 놓고 장사를 하던 이태원시장 상인들의 도움으로 등록금을 보태고 매일 새벽, 시장의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로 일하며 학업을 이어갑니다.

그런 가운데도 학생회장이 된 그는 1964년 한일회담 반대 시위를 주도했다가 경찰에 붙잡혀 6개월을 복역합니다. 대학 졸업 후 시위전력으로 취업을 못하게 되자 박정희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보냈고 박 대통령이 정주영 현대회장에게 연락을 해 1965년 어렵사리 현대건설에 들어가게 됩니다. 경리과 평사원으로 입사한 이명박은 5년 만에 이사가 됐고 12년만인 1977년 37세 나이로 사장, 48세에 회장까지 승진하여 ‘샐러리맨의 신화’가 됩니다.

1992년 민주자유당에 입당해 정계에 입문, 14대 전국구 국회의원에 이어 15대 지역구 국회의원(서울 종로)에 당선됩니다. 2002년에는 제32대 서울특별시장에 당선돼 청계천 복원사업, 버스 중앙차로제 시행, ‘서울 숲’ 조성 등 굵직굵직한 사업을 일궈내 시민들의 호평을 받습니다.

2007년 박근혜 씨와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이겨 ‘747공약’을 내걸고 ‘경제대통령’이 되겠다는 슬로건으로 대통합 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에게 521만 표라는 큰 표 차로 제17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그야말로 순풍에 돛 단 듯한 출세가도였습니다. ‘747공약’이란 ‘경제성장 7%,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7위 선진대국’을 달성하겠다는 야심찬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도 실천하지 못한 뜬구름 잡는 공약이었지만 국민들은 그것을 은근히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당선과 함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싸고 수십만의 대규모 반대시위에 부닥쳐 곤욕을 치릅니다. 뒤에 알려진 얘기지만 당시 그는 캄캄한 밤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거리를 메운 시민들의 촛불을 바라보며 공포에 떨었다고 합니다.

이 대통령은 또 편중된 인사를 거듭해 구설에 휘말렸습니다.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강부자(강남·부동산·자산가) 내각’이라는 비판을 받았고 ‘한반도 대운하’라는 거창한 계획을 발표해 국민들의 반발을 샀습니다. 뒤따라 4대강 정비사업을 밀어붙여 비난을 받았습니다. 만약 당시 대운하계획을 강행해 전국을 마구 파헤쳤더라면 지금 우리 국토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또 임기 내내 ‘사자방’이라는 의혹도 끊임없이 제기됐습니다. ‘사자방’이란 ‘4대강’ ‘자원 외교’ ‘방산비리’를 일컫는 의혹입니다.

지금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받고 있는 혐의는 뇌물, 조세포탈, 횡령, 국고손실,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대통령 기록물법위반 등 20여 가지입니다. 뇌물액수만도 무려 110억 원. 다스 미국소송비 삼성대납 뇌물 60억, 국정원 특수활동비 횡령 17억, 이팔성 전 우리금융회장 인사청탁 뇌물 22억, 성동조선 뇌물 5억, 김소남 전 국회의원 공천헌금 4억, 지광스님 불교대학설립청탁 뇌물 3억 원 등입니다.

이 전 대통령은 “정치 보복”이라며 “아니다, 모른다, 허위다, 조작이다”라고 잡아떼고 있지만 십 수 년을 곁에서 집사노릇을 한 심복들이 모두 구속돼 양심선언을 한 마당이라서 중형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소리 높여 외칩니다. “뭐, 도곡동 땅이 어떻다고요? BBK가 어떻다고요?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여러분! 누가 나에게 돌을 던질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의 카랑카랑하던 사자후(獅子吼)는 이제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게 됐습니다.                

퇴임 뒤 펴낸 자서전 ‘대통령의 시간’에 보면 그는 어려서 장래 희망이 ‘선생님’과 ‘소방관’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직’이 가훈이라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순수했던 희망과 가훈은 휴지통에 들어간 지 오래입니다.

‘인간 이명박’은 욕심을 줄여야 했습니다. 권력에 대한 욕심, 재물에 대한 욕심, 둘을 경계해야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무거운 얼음통을 메고 “아이스케키!”를 외치며 거리를 헤매던 그 시절, 이태원 새벽시장에서 쓰레기를 치우던 그 시절을 잊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랬던들 오늘의 이 치욕은 당하지 않아도 됐을 것입니다.

대통령을 역임한 인물이 동네북이 되어 만신창이가 된 마당에 만금(萬金)을 감춰 놨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슬픈 ‘이명박의 엘레지’…인간만사 새옹지마입니다.

 

 

 

 

김영회(언론인) yhk93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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