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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장길 칼럼] 질박한, 그리고 전향적인(1)

기사승인 2018.04.18  08: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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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서울 여의도 국회의상당 거리에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여성경제신문 자료사진

한국에서 머물다가 미국에 들어오면 피부로 느껴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사람들과의 부딪힘과 그에 따른 불쾌함이 적다. 어느 사회보다 자유분방하면서도 남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게 배려하고, 자신은 남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 혹 다른 사람의 옆을 스치거나, 조금이라도 방해가 될 듯하면 재빨리 “실례합니다”라고 이해를 구하는 일은 거의 습관적이다. 만일 약간이라도 거슬렸다면 “미안합니다”가 즉각 튀어나오고, 거꾸로 상대방의 과실은 웬만하면 참고, 웃음을 띄면서 “괜찮아요”라고 양해해 준다. 길에서 모르는 사람이라도 시선이 마주치면 가볍게 인사를 나누거나, 최소한 미소라도 건네주는 풍경은 예사롭다. 아는 사이라면 깜짝 반기면서 대개 악수는 물론, 안아주고, 볼에 입을 맞추는 등 서로 극진한 친밀감을 나눈다. 인파 속에서라도 어깨를 툭 치고가면서 모른 척 한다면 버럭 화가 치밀지 모르겠다.

거리나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떠들거나 담배를 피워대면서 꽁초를 휙휙 버리는 행위, 가래를 퉤퉤 뱉는 행동들이 드문 이유가 선진국이기 때문이라고 가볍게 치부하기 쉽다. 또 미국이라고 다 그러냐는 이의가 있을 수 있다. 물론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로 후진 지역이나 오염된 곳에서는 타인을 자극하는 거친 짓들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고, 멀쩡한 곳에서도 의외로 독불장군식의 꼴사나운 모습을 볼 수도 있다. 그런 진 데를 벗어나 주류사회로 깊이 들어갈수록  건전하고 세련된 품행들이 사회가 깔끔하게 돌아가도록 윤활유 역할을 해주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서로 인정해 주면 그만큼 관계들이 매끈해지고, ‘충돌의 낭비’는 줄여지니까 ‘존중하면 존중받는다(Respect, respected.)’라는 금언은 미국을 건강한 사회로 만드는데 훌륭한 토양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대중사회에서 분위기가 조성되면 성원들은 저항없이 따라가고,  많은 사람들이 호의를 갖거나 분명한, 또는 묵시적인 동의가 있으면 문화는 확산되기 마련이다. 그런 분위기를 해치는 고약함은 여러가지 규범으로 제재를 받는다. 이성을 향해 예쁘다든지, 잘 생겼다고 가볍게 농담을 던져도 당사자가 조금이라도 혐오감을 느꼈다면 성희롱 혐의로 법정에 설 수 있다. 그만큼 법은 사회 깊숙히까지 세세하게 망을 치고 있도록 정교하다. 법의 사슬은 사회를 어지럽히는 독소에 대한 파수꾼답게 엄격한 장치이자, 질서의 보루다.

미국의 공권력은 너그러운 민주사회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서울 만큼 강력하다. 이질적인 인종들이 모여서 사는 끓는 냄비(melting pot) 같은 특수한 환경과, 그에 따라 형성된 개인주의를 다잡을 필연적인 산물이다. 그보다도 미국사회를 깊숙히 들여다보면 미국인들의 의식 속에는 타인에 대한 존중과 관용, 포용이라는 금도의 자세가 넓게 자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사회의 가치관을 관통하는 기독교정신이 꽃피워 놓은 문화적인 풍토일 것이다. 거리에서나, 직장에서나, 이웃 간에나 모든 인간관계의 바닥에 잔잔히 흐르는 국민들의 아름다운 의식이다. 타인의 인격과 권리를 존중하는 자세는 계산적이고, 이기적으로 꼬여 있으면  마음 속에서 울어나오지 않는다. 구부러지지 않고 질박한 심성이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안고 있는 미국을 난마같이 얽힌 이해관계를 헤쳐나가면서 우뚝 설 수 있게 하는 바탕이 돼 주는 듯 싶다면 과장일까?

캘리포니아 웨스트 LA 딸네 집 이웃에 금슬 좋은 미국인 젊은 의사 부부가 살면서 늘 살가웠다. 딸네와는 아이들이 학교의 같은 반이고, 남편은 가족의사며, 그 부친은 딸의 출산을 도운 산부인과 의사여서 서로 교우가 특별했는데, 나까지도 가끔 길이나 아이들 학교에서 만나면 반가워하는 이들이다. 그 부인이 신체의 근육이 점점 줄어드는 병, HIBM(Hereditary Inclusion Body Myopathy)으로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사실을 최근에 알고는 적잖게 놀랐다. 본인은 깡마르기는 했으나 조금도 티를 내지 않고 쾌활하고 당당하며, 남편도 전혀 눈치챌 수 없게 부인을 지극정성으로 위하면서 명랑하다. 부인은 그 희귀병으로 곧 휠체어 생활에 들어갈 것이고, 미구에 생을 마감할  운명에 처해 있다.

남편은 의사로서 바쁜 직업에 종사하면서도 아내와 아이의 뒷바라지는 물론, 온갖 가사를 도맡아 헌신적으로  감당해내고 있다. 그 가족에게 슬픔과 괴로움이 어찌 깊지 않겠는가마는, ‘그 절박한 상황을 이기며 어떻게 그리 긍정적이고, 굳세게 살아가고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태연하고 자약하다. 그들의 환한 웃음과 일에 몰두하는 동작들은 지극히 아름다운 영화예술의 장면들 같다. 어쩔 수 없는 처지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러나 주눅들지 않고 주어진 몫 만큼은 더 치열하게 살겠다는 전향적인 자세, 그런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까지 한다. 그 가상한 삶의 철학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일까? 미국이 역사를 통해 끊임 없이 다져온 개척정신의 유산이며, 미국사회의 저변에 흐르는 기독교정신의 선물이 아닐까?  

내가 아이들을 미국에서 교육시키면서 가장 눈여겨 본 언어는 '도전(challenge)'이라는 단어다. 어릴 때부터 학교는 도전정신을 우선적인 가치로 심어주고, 끊임없이 북돋아준다. 그렇게 심어진 가치는 아이들의 성장과 함께 자라서 삶의 동기가 되고, 부단히 새로운 길을 찾는 창의력이 된다. 나아가 실용주의와 합리주의가 가득한 사회적 바탕 위에서 진취성과 추진력으로 키워져 강한 경쟁력과 리더쉽의 동력이 돼 왔다고 여겨진다. 이 또한 오늘의 미국을 떠받치고 있는 하나의 정신적 기둥이 아닐까 한다. 새계최강국은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이 아니다. 

거대한 미국을 감히 한두개의 인상과 개념으로 재단하기는 무리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름의 인상으로 그 사회를 일단 평가하고, 오래 기억한다. 인상들의 안에 담겨 있는 속살을 들여다 보려 힘쓴다면 쉽지 않은 숙제, 미국사회의 이해에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송장길(언론인·수필가) womaneconom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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