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김영회 칼럼] 남과 북 그리고 미국

기사승인 2018.05.21  10:11:14

공유
default_news_ad2
1883년 9월 29일자 뉴욕의 신문에 실린 조선 사절단이 ‘큰 절'하는 모습. 민영익 등 일행이 호텔 바닥에 엎드려 아서 대통령에게 예를 올리고 있는 장면이다. 

―‘큰 절’로 엎드려 맺은 인연, 136년을 이어 온 미국과의 관계. 남과 북의 잇단 대미정상회담. 중요한건 전쟁이 아니라 평화, 정상회담에 조바심이 납니다―

1883년 9월 2일 대 조선국 특별사절단 11명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한해 전 맺은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에 따른 답례 차 미국에 온 보빙(報聘)사절단이었다.

워싱턴에 있는 미국 대통령을 방문하여 고종(高宗)의 친서를 전달하고 상호 우의를 다지는 목적이었지만 겸사겸사하여 조선을 도와줄 우방을 만들고자 한 목적이었다.

조선이 문호를 개방한 후 처음 외국에 보낸 사절단이었는데 모두 25세를 전후한 홍안의 청년들이었다. 일행은 민영익 23세(공사·전권대신), 홍영식 28세(부공사), 서광범 23세(서기관), 유길준 27세, 최경석(무관), 변수 22세, 고영철, 현광택, 퍼시벌 로웰 28세(미국인·외무비서관), 미야오카 쓰네지로(일본인통역), 우리 탕(吳禮堂·중국인) 등이었다.

이들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면서부터 미국의 발전한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고 거리의 시민들은 조선 사절단의 울긋불긋 화려한 색채의 복장에 놀랐다. 23년 전에 77명이나 몰려왔던 일본 사절단의 옷차림과는 완전히 대조되었다.

샌프란시스코신문은 특히 조선 사절단의 복장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화려한 색채를 띤 정교한 무늬의 긴 도포는 극히 환상적이고 기이하게 보였다. 사절단은 시내 중심가 호텔에 묵었는데 엘리베이터가 뭔 줄 모르고 불쑥 탔다가 갑자기 흔들리며 위로 올라가자 비명을 지르며 기겁을 했다. 그러나 곧 어떤 기능을 하는 건줄 알아차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애써 태연하기도 했다.

일행은 미국인들의 다양한 생김새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사절단 중 한사람이 기자와 인터뷰한 내용이 신문에 실렸다. “놀랍고도 아름다운 부인들과 건장한 체격에 총명한 얼굴을 한 신사들, 그리고 흰 셔츠를 입고 눈은 사람의 눈 같지 않게 흰 흑인들을 보고 너무 놀랐다.”

사절단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하여 대륙횡단 열차를 타고 시카고에 도착하였다. 곧 수도공급시설과 링컨공원을 시찰하고 시내의 경찰서와 소방시설, 그리고 만국박람회를 관람하였다.

뉴욕으로 이동한 사절단은 제5번가 호텔에 투숙하였다. 이곳에서 체스터 아서 미국 대통령과 조선사절단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민영익과 홍영식은 대통령을 만나기 전 일행인 퍼시벌 로웰, 수행중인 포크 소위와 함께 수없이 문답 예행연습을 하였다. 사전에 철저를 기해야 실수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서 대통령이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악수를 청하려 할 때였다. 민영익이 신호를 하자 일제히 무릎을 꿇고 손을 머리 위로 올린 다음 이마가 마룻바닥에 닿을 때 까지 천천히 허리를 굽혀 ‘큰 절’을 했다.

여기서도 사절단의 복장은 기자들의 흥미를 사기에 충분했다. 민영익은 발끝까지 늘어지는 자주색 도포를 입고 있었는데 살짝 벌어진 사이로 흰 바지가 보였다. 허리에는 황금실의 화려한 무늬를 수놓은 넓적한 요대를 둘렀으며 흉배에는 자줏빛 바탕에 봉황새 두 마리가 수놓아져 있었고 여러 가지 색깔로 가장자리를 두른 띠가 붙어 있었다. 부사 홍영식이 입은 관복은 민영익의 것과 대체로 같았으나 흉배에 수놓은 봉황이 한 마리인 사실로서 그의 지위가 한 단계 낮음을 표시하고 있었다.

아서 대통령은 민영익 일행을 정중히 맞았다. 대통령과 민영익은 잠시 서로 얼굴을 진지하게 바라 본 다음 통역을 통해 인사를 나누었다.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조선인이 외국의 국가 원수에게 조선말로 인사하고 악수를 나누었다. 다음 홍영식, 서광범, 기타 일행이 차례로 국무장관에 의해 대통령에게 소개되었다. 또한 배석했던 미국 관리들도 조선 사절단에게 소개되었다.

공식 소개가 끝난 다음 민영익은 대통령 앞에서 정중하고도 낭랑한 음성으로 국왕의 친서를 읽었다.

“사신 민영익, 홍영식 등은 대아미리가(大亞美里加:대America)합중국 대백리새천덕(大伯里璽天德·대프레지던트)께 아뢰옵니다. 사신 등이 대 조선국 대 군주 명을 받자와 대신으로 대백리새천덕과 미합중국 모든 인민이 한가지로 안녕을 누리시기 청하오며 두 나라 인민이 서로 사귀고 우의를 돈독히 하기를 바라나이다.” 배석했던 미야오카 쓰네지로가 이를 일본어로 통역했고 로웰이 다시 영어로 통역했다.

아서 대통령은 국서를 받아 든 다음 답사를 했다. 환영한다는 인사와 함께 조선은 아름다운 나라며 귀국은 우리나라의 이웃이나 다름없다. 동양의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귀국과 우리가 교역을 발전해야 하고 이 친선관계는 쌍방에게 다 같이 유용할 것이며 앞으로도 끊임없이 증진되어야만 한다는 등의 인사말이었다.

답사가 끝나자 대통령과 사절단은 다시 악수를 나누었다. 접견이 끝나고 문 밖으로 나갈 때 사절단은 처음 들어 갈 때와 마찬가지로 바닥에 엎드려 큰 절을 했다. 다음 날 뉴욕의 신문들은 미 대통령이 조선 사신들을 만나는 특별한 모습을 대서특필로 보도했다.

사절단은 뉴욕의 센트럴 파크, 만국박람회를 돌아보고 시범농장, 직물공장, 제약회사, 공공청사를 시찰하고 쉴 사이도 없이 신문사, 해군기지,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등을 방문하였다. 전기회사를 방문했을 때는 무엇인가를 계속 받아 적고 있던 한 사람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안내자에게 질문을 했다. “그렇다면 전기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안내자가 열심히 설명을 했지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사절단 일행이 신문사 시찰을 마치고 나올 때였다. 거리에는 신기한 옷차림의 동양인들을 보려는 구경꾼들로 가득 찼다. 경찰은 사절단 일행을 위해 인파를 헤쳐 길을 내느라 진땀을 흘렸다. 그때였다. 마차에 올라 탄 일행을 향해 군중 속에서 누군가가 뭐라고 소리를 쳤고 모두 합창하듯 따라했다.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일행은 수치심을 느꼈다. 일행 중 한사람이 노기어린 얼굴로 군중을 노려보았다. 분노로 가득 찬 그의 위세에 눌려 구경꾼들이 조용해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사절단장인 민영익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뒤를 따라 오던 마차 속에는 아이들이 타고 있었는데 일행을 바라보며 계속 깔깔거리고 웃어댔다. 뭔가 놀리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민영익은 조용히 몸을 돌려 그들에게 나직이 눈인사를 했다. 당황해진 아이들이 오히려 무안해하며 얼굴을 돌렸다. 조선사절단의 첫 미국방문은 가는 곳마다 구경거리가 되곤 했다.

신세계를 다녀 온 뒤 민영익은 소회를 털어 놓았다. “나는 어둠속에서 태어나 광명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어둠 속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직 나는 내가 갈 길을 분명하게 내다 볼 수가 없으나 멀지 않아 찾아 낼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상은 홍성사가 펴 낸 홍사중 지음 ‘상투 틀고 미국에 가다’의 일부분입니다.

조선의 첫 보빙사절단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미국에 가 엎드려 ‘큰 절’로 대통령을 ‘알현’하고 온 지 올해로 135년이 되었습니다. 그 뒤 조선은 미국과 외교 관계를 유지해 왔으나 1910년 한·일합방으로 관계가 끊겼다가 1945년 일본의 패망으로 미군이 남한에 진주하면서부터 다시 시작돼 오늘에 이르기까지 73년간 대한민국과의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1950년 6·25전쟁 때는 북한군에 밀려 국운이 풍전등화가 되었을 때 구세주처럼 나라를 지켜준 것도, 그 뒤 안보를 지켜주고 경제를 일으켜 이만큼 발전하게 된 것도 미국의 도움에서 비롯된 것임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피로 맺어진 ‘혈맹’이란 표현이 지나치지 않습니다.

오늘날 미국은 세계 제일의 국력을 가진 초강대국입니다. 지구상 어느 나라도 미국과 맞설 수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임을 자임하는 것도 바로 그와 같은 국력 때문임은 물론입니다.

그런 미국의 대통령이 남북한의 정상과 연이어 회담을 갖게 돼 전 세계의 이목이 한반도로 쏠리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 우리 문재인 대통령과 워싱턴에서,  6월 12일에는 싱가포르에서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갖습니다.

우리 한국이야 동맹관계이니 협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겠지만 북한이야 그동안 70년이 넘게 적대관계를 유지해 온 견원지간(犬猿之間)이니 만남 자체만으로도 역사적인 사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북한 핵을 둘러싸고 불과 한두 달 전만해도 ‘병든 강아지’니 ‘늙다리’ ‘정신병자' ‘막나니 깡패’니 온갖 악담을 주고받던 사이인지라 두 사람의 만남이 어떤 장면을 연출할까, 긴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설마 멱살잡이야 잡지 않겠지만.

분명한 것은 세 사람에게 바라는 전 세계인, 특히 남북한 한민족의 공통된 여망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미, 북·미 회담에 거는 기대에 조바심을 갖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김영회(언론인) yhk939@hanmail.net

<저작권자 © 여성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