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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장길 칼럼] 6·13선거후 정치지형과 보수의 재건

기사승인 2018.06.18  09: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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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태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지난 15일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마치고 국민에게 '저희가 잘못했습니다'라며 무릎을 꿇고 있다. /연합뉴스

지방 정부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여당의 압도적인 승리로 결판나자 그 파장이 높고 길다. 여권은 웃음꽃 속에서 축배를 들고, 야권은 충격으로 중병에 걸렸다. 운동장은 더 왼쪽으로 기울어져 버렸다. 한국당과 미래당이 참패의 조짐을 부정하면서 대책없이 낙관하고 있던 터라 여파가 더 컸다. 보수의 궤멸까지도 운위되고 있다.

보수 야권의 심각한 추락은 엄연한 현실이다. 혼란에 빠졌고, 당장 대안도 보이지 않는다.  보수의 몰락과 재기불능으로 보는 견해도 있고, 의도적으로 과장하는 기색도 있다. 그러나 선거는 때로 큰 바람의 흔적이다. 새천년민주당도 새누리당도 참패한 전례가 있다. 다만 이번은 기록적인 승패의 차이를 보여서 보수의 재건이 힘들다고까지 여기는  것이다.

보수 야권이 위축 수준을 넘어 몰락하면 야권은 물론 여권에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국가적으로도  손실이다. 건전한 야당이 제구실을 해야 여권도 독주하지 않고 궤도 위에서 전향적으로 발전할 수 있고, 국사(國事)는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으로 정상적인 거버넌스(governance)를 유지할 수 있다. 어떤 정치인과 분석가들은 야권의 곤경을 헤어날 수 없는 파탄인 양 평가하지만, 정치는 생리적으로 등락하기 마련이고, 보수 이념도 진보와 함께 부단히 생성돼 양립하는 불멸의 정치 현상이므로 희망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보수의 재건은 참패 원인의 통렬한 성찰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무엇이 보수를 나락으로 떨어트렸는가.

첫째, 근원적인 패착은 그 성원들이 스스로 불렀다. 보수의 지지를 받은 전직 대통령들의 잇단 실족과 지나친 경쟁은 내부의 파열을 낳았다. 그 결과로 이어진 탄핵과 구속으로 두 전직 대통령 본인들의 추락은 물론, 보수의 길도 훼손됐다. 그 휘하들이 적진 앞에서 피터지게 싸워 보수의 가치에 상처를 내게 했으며, 국민의 실망이 덕지덕지 쌓이게 했다. 탄핵정국과 다스 소유권 시비의 후유증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더구나 한국당의  홍준표 대표는 정치는 언어임에도 정제되지 않은 비속어까지 쏟아내 비호감을 더했고, 미래당은 정치노선을 함께하는 동지들의 집합이라는 정당의 기본에 의구심마저 주었다.

둘째, 성장 뒤에 따르는 복지의 요구에 만족스럽게 대응하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진보적인 복지를 공약하고도 국정운영의 메카니즘에 밀려 과감한 정책을 펴지 못했다. 복지는 소득격차와 성장 뒤에 따르는 부수적 요구로 진영논리보다 어느쪽이 현명한 대책인가로 경쟁해야 했는데  보수는 발빠르게 부응하지 못한 것이다.

셋째, 안보 문제에서 정부의 야권 존중을 얻어내지 못하고 주요 결정에 참여하는데 실패했다. 남북과 미북정상회담이 몰고온 거대한 상황변화의 흐름을 타지 못한 채 낡은 프레임으로 공세만 취했다. 보수의 가치도 터지는 봇물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넷째, 청년들의 숨결이 압도하는 대중사회, 대중문화를 함께 호홉하는 데에 미치지 못했다. 한국은 가장 빠르게 대중사회로 탈바꿈하는 나라 중의 하나인데, 보수는 그에 다가가는 속도에서 체질적으로 느렸다. 정부의 언론기관에 대한 영향력이 급격히 높아졌는데도 속수무책이었다. 문화계의 성향이 진보 일색임도 주목할 현상이다.

다섯째, 진보진영이 강성 시민단체들과 민노총, 전교조 등 사회 기층에 뿌리를 둔 외곽 조직을 우군으로 유대를 강화할 때 보수진영은 반대세력으로만 간주했다. 구름처럼 움직이는 무정형의 대중은 결속력이 강한 조직의 좋은 무대임을 백안시한 것이다. 

여섯째, 보수의 가치와 비전의 제시에 미흡했고, 그것들의 필요성을 부각시키는데 느슨했다. 국민들은 보수세력의 내분과 비판하는 이미지에만 익숙하고 생산적인 이미지 빌딩에는 주목할 수가 없었다. 비판의 역할에서도 탈원전과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축소, 세율 인상, 비정규직 문제, 드루킹 사건, 넘치는 적폐 수사, 한미군사훈련 중단 등 논란이 돼 있는 정부의 시책 등을 이슈화하는데 시늉만 냈지 무력하고 무능했다.

보수 정당은 이대로는 2020년 총선과 2022년 대선에도 희망이 없다는 비관적인 평을 받기도 한다. 극단적으로는 완전히 해체돼야 한다는 소리도 듣는다. 그러나 과반에 가까운 의석을 보유하고 있는 두 정당이 기득권을 완벽하게 내려놓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정치가 사람들이 만나고 모이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정당의 해체도 나중에 보면 일종의 변신에 불과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보수 재건의 요체는  하드웨어가 아니고 소프트웨어에 있다. 국민을 감동시킬 원대한 국가비전의 정립과 선 굵은 노선의 제시, 정책개발을 쏟아낼 산실의 신축, 그리고 그런 작업을 진두 지휘할 인재의 광범한 영입이 나아갈 길이다. 국민들은 언제나 희망을 원하고, 그 희망을 주는 지도자에게 환호를 보낸다. 

한국당에서 조기 전당대회 소집으로 지도층을 재구성하자는 목소리와 외부인사를 영입해서 비상대책위를 구성하자는 주장이 들린다. 그러나 당내 유력한 후보자들이나 영입 대상으로 거론되는 외부인사들 중에서 보수 진영이 추대하고 따를 만한 출중한 지도자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운을 일으킬 국가비전과 깃발을 들고 이끄는 넘치는 카리스마, 존경과 화합의 지도력을 두루 갖춘 인사가 떠오르지 않는다. 도토리 키 재기고, 그 물에 그 밥 말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국가의 미래를 위한 걱정들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처음부터 맞춤형 인사를 찾기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지금 보수가 처해 있는 위급한 상황에 대한 인식과 보수의 가치에 대한 철학이 뚜렸한 인사, 건전한 세계관과 국가관이 철저한 인사,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역경을 딛고 앞장서서 강인하게 이끌어 갈 재목을 찾으면 된다. 일단 추대하거나 선출한 뒤에는 중지를 모아 삿된 이해를 누르고 일사분란하게 함께 나아가는 일이 보수 야당이 갈 길이다.

보수주의는 기득권에 안주하면서 편안하려는 편의주의도 아니고,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과실물도 아니다. 오히려 부단한 노력으로 축적된 건강한 제도와 문화를 지키면서 끊임없이 개선해 나갈 때 빛나고 발전할 수 있다. 안보를 지킨다고 안보적 상황의 급변에 저항만 하고 있으면 뒤처지고 만다. 어떻게 대처하는 길이 국가안위를 확보하는가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국가의 성장도 복지의 갈증을 포용하면서도 선진국으로 굴기할 동력과 방법을 추진하는 지혜에서 찾아야 한다. 혼신의 노력으로 감동적인 대안을 내놓을 때 국민들의 호응을 받을 것이며 신뢰는 복원될 것이다. 

한국 국민들은 이제 세력 다툼이나 번지르한 레토릭으로 분칠하던 낡은 정치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진영논리나 지역감정, 패거리 행태도 철 지난 구태다.  남녀노소, 장삼이사들도 정치인들의 행태를 세세히 꿰뚫어 보고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섣부른 정치공학은 반작용만 일으킬 뿐이다. 상대편을 탓할 일도 아니다. 환골탈태는 이런 자세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는 보수 뿐 아니라 진보진영의 정권이나 정당에도 똑같은 원리와 무게로 적용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를 도입한 지 70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숫하게 경험하고 학습한 한국의 정치적 자산이다. 

송장길(언론인·수필가) womaneconom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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