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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장길 칼럼] 한국 여성운동의 풍향계

기사승인 2018.07.19  18: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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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서울 대학로에서 '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가 열리고 있다. 이들은 경찰의 '홍익대 회화과 몰카 사건' 수사가 피해자 성별에 따라 편파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하며 집회를 열었다. /여성경제신문 자료사진

로마 신화의 비너스는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를 이은 여성상인데, 그 이전 고대 신화로부터 내려온 아름다운 여성의 표상이다. 비너스의 아름다움은 우아한  미모뿐 아니라 애정과 성애(性愛), 모성애의 원형질을 품고 있는 아우라다. 일찍이 플라톤은 미와 선이 하나가 된 이상형(kalokagathia)을 제시해 아름다움의 내면에 착함이 들어 있어야 제격임을 설파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성들은 성장하면서 그런 이상적인 여성상을 동경하며 사랑의 감정을 키워 이성의 짝을 찾기 시작하며, 여성들도 늠름하고 다정한 남성상을 그리며 자란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인간의 1순위 욕망의 발현이고, 사랑의 연결고리며, 세상의 근본 원리다. 부부와 가정, 종족, 그리고 공동체를 형성하고 이어주는 뿌리다. 

수렵시대와 농경사회, 전쟁이 잦던 힘의 시대에서는 남녀 관계가 남성 우위의 질서 위에서 이뤄진 건 부인할 수 없다. 남성들은 밖에 나가 힘을 겨뤄가며 유·무형의 수확을 걷어들였고, 여성들은 가정에서 보호를 받으며 가사에 전념했다. 자연히 남자들이 가정의 주도권을 잡았으며, 여성들을 지휘했다. 깊은 애정이 서린 포근한 가정을 이루기도 했지만 권위적인 엄격한 서열도 존재했다. 이런 남성 본위의 시대를 비판하면서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경향이 나온 것은 산업의 큰 변화가 이뤄져 인간들의 삶의 형태가 바뀐 1900년대 중반 이후였다. 여성들도 직업을 갖게 됐고, 투표권을 확보하게 되는 시기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힘보다는 두뇌, 세세한 기술, EQ(감성지수) 등이 더 중요해지고, 그에 적합한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늘자 여성들의 지위에 대한 각성이 일기 시작한다. 어떤 분야에서는 여성들의 섬세함과 감성적인 특성이 남성들을 밀치고 들어가 성과를 보였다. 캐시어 같은 서비스 업종, 비서직, 경공업의 가볍고 손쉬운 작업, 소형 전자제품의 조립 등의 공정에서는 여성 근로자들이 더 우세했다. 여성들이 남성들과 대등한 지위을 요구하는 페미니즘의 본격적인 출발선이다. 

한국에서는 가부장제가 두터웠던 유교적 전통과 후발 산업화로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늦어진 탓에 페미니즘의 바람도 연착한 듯하다. 2017년 통계에 따르면 여성의 정규직 취업자가 전체의 38.8%로 남성보다 11.2% 정도 적지만 점차 격차가 더 줄고 있으므로 여성파워의 약진에 비례해서 위세도 커진 것이다. 그에 따라 서양에서는 한물 간 듯한 페니니즘 운동이 한국에서는 요즈음 제철을 맞은 게 아닐까?

미투운동과 강남역 화장실 여성 피살 사건, 페미니즘 단체 '워마드' 등 여초 사이트들이  주도한 홍대 미대 도촬 수사 규탄집회를 계기로 여성들의 목소리가 매우 떠들썩하다. 여성파워의 신장에 따라 여성의 발언권이 커진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 양상이 급진적이고 과격해서 걱정스럽기도 하다. 

남성의 완력이나 권위로 여성을 학대하는 일은 이제 용납이 안 된다. 과거에 횡행했던 남성 위주의 제도와 관습도 상식에 어긋난다. 취업 일선에서의 선발기준의 차별도, 급여와 승진 등 각종 대우에서의 차등도 두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 인식이 뚜렸해졌다. 그렇게 사회적 정의가 세워진 만큼 이에 벗어나는 잔재가 있다면 당연히 반발해서 고쳐야 될 것이다. 그런 저항 운동은 어떤 반대에도 부딪히지 않고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여성들이 상의를 홀딱 벗고 시위를 한다든지, 국가 원수에게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는 공약을 지키지 않는다고 “곰 재기해(문 자결해)”라는 구호를 외친 일, 성체 모욕 등은 그 운동의 앞에 서있는 젊은 여성들이 제정신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남성의 우위를 인정하지 않고 동등해지려는 성 평등 운동은 이해가 되지만, 남성을 가해자로 규정하고 여성을 피해자로 규정하는 극단적인 젠더 이슈화와 여성 우월주의를 주장하며 남성 권위의 탈취를 위해 공격적인 움직임까지 나아가는 것은 지나치다. '매갈리아(남성혐오 사이트)'는 “한남충이라며 한국남성 전체를 비하하고,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남성들에 당한 복수처럼 미러링(역지사지)으로 남성들을 공격해 일반의 역겨움과 분노마저 자극한다. 

남성과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여러면에서 다르므로 그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남성은 대륙이고 여성은 바다며, 대륙과 바다의 끝없는 교감이 영겁을 이어간다는 비유도 있다. 그런 차이점 때문에 남자다움과 여성스러움도 돋보이면서 서로의 매력이 된다. 일반적으로 남자는 선이 굵고 이성적인 반면, 여성은 섬세하고 감성적이다. 이런 특성을 서로 존중하고 살려서 보완하고 힘을 모아가는 과정이 값지다. 어느 편이 우월하고, 어느 편이 이겨야 한다는 경쟁의식은 세상의 돌아가는 이치에 전혀 무익한 발상이다.

사회의 제도와 문화를 고치거나 바꾸려는 사회운동의 첨병들은 사회와 역사, 문화,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얽히고설켜 있는 세상의 실체를 폭넓게 이해하고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철학적 소양을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이다. 설익은 신념만으로 귀따갑게 목소리를 높인다면 사회의 호응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사회에 해를 끼치는 일이 될 수 있다. 사회의 거대한 메카니즘은 섣부른 주장에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더구나 오랜 세월 형성된 문화는 그 역사적인 깊이 때문에 가벼운 손짓을 쉽게 따라가지 않는다.

일반 가정에서는 남녀 부부가 깊이를 잴 수없을 만큼 지고지순한 사랑을 나누며 행복하다. 거기에 사랑이 없으면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일터에서도 남자들은 여성을 배려해 주고, 여성들은 오누이처럼 남성들을 보살펴 주는 예는 얼마든지 널려 있다. 그게 인간사회의 참모습이지 않은가. 그 속에서 젠더를 엄격히 가르고 투쟁적으로 나가는 행위들이 올바르다 할 수 있을까? 여성운동은 진영논리도 아니고, 이익집단의 투쟁도 아니다. 인간답게 살자는 몸부림이다. 균형과 절제, 조화가 어우러질 때 아름답다.

여성운동 전문가들도 여권신장에만 열을 올리도록 부추키는 언행을 일삼으면  환영을 받지 못할 것이다. 여성운동의 현주소를 분명하게 이해하고 그 바탕 위에서 미래를 예상하고 건설적인 비전을 제시해 주는 게 그들의 소명이다. 문화인류학과 사회학, 전통, 새로운 시대적 경향, 미래에 닥칠 변화 등 여러 요인들을 감안한 바람직한 판단과 지도력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일부 여성들이 남성을 혐오하고 공격하는 현상은 남성을 존중해야 여성도 존중된다는 원리를 망각하는 일이다. 또 어떤 여성도 남성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진리를 도외시 하는 것이다. 급진적인 여성도 부친은 남성이고, 배우자도 남성이며, 아들도 남성인데 성별로 나누어 도전하는 것은 모순이다.

여성운동이 남성우위의 불균형을 벗어나  인간적인 대우를 받도록 하자는 데에 그치지 않고  도를 넘어서 사회와 문화에 상처를 주거나 누를 끼치면 해악이 된다. 여성운동도 사회와 문화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여권이 올바르게 신장되도록 하는 감시와 격려가 필요하며, 여성운동의 바람이 어디를 향하는지 풍향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송장길(언론인·수필가) womaneconom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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