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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장길 칼럼] 일상 속을 떠도는 권력의 혈전

기사승인 2018.07.27  09: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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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설치기사의 무성의한 태도가 여름 폭염만큼 소비자들을 짜증나게 한다. /여성경제신문 자료사진

기온이 섭씨 30도를 오르내리고, 습도까지 80%를 넘나드는 폭염에 지쳐 집안에 직립 에어컨을 들이기로 했다. 자연스러움을 제치고 인위적으로 찬 바람을 만드는 기계에 더 의존하게 되어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40도까지 오른다는 예보에 손을 들었다. 

가까운 이마트에 들리니 22평형을 권한다. 저렴한 17평 정도를 원했으나 거실의 크기 때문에 설치기사가 ‘사후에 불평을 않는다는 서약’을 하지 않으면 설치를 거부한다며 계속 강권한다. 무슨 서약까지 해야 하느냐고 우겼지만 지고 말았다. 성수기라서 1주일을 기다려 문제의 에어컨이 도착했는데, 배관 청소와 용접 등의 비용을 따로 내라며 23만원이나 현찰을 요구했다. 의외의 청구고, 주말이라 현찰 구하기가 난감했다. 회사 방침이 신용카드는 받지 않는다고 단호했다. 잠깐 실랑이가 있었지만 월요일에 계좌이체를 제시했고, 그들도 소극적으로 수긍하는 듯한 눈치였다. 

그 뒤부터 설치팀의 태도는 매우 비협조적이었다. 이어서 엉뚱한 문제가 튀어 올라왔다. “이 집은 벽 속으로 이어진 배관이 찝혀 설치불가다”라며 그냥 가겠단다. 방법이 없겠냐고 사정했으나 벽을 깨고 구부러진 파이프를 잘라낸 뒤 용접할 수는 있으나 자기들은 회사 규칙으로 그런 일은 할 수 없으니 설비업체를 불러 새로 시공을 한 뒤 연락하란다. 추가 비용을 부담하겠으니 회사나 이마트에 연락해서 방법을 찾아달라고 간곡히 요청해도 마이동풍이었다. 그들을 대한 나의 태도가 문제인가를 생각해 봐도 거슬릴 게 없었다. 날씨는 더운데 다른 약속까지 참석하지 못하고 멀리 나갔다가 달려와 기다린 입장은 헌식짝 신세가 되었다.

기사들이 떠난 뒤 이마트에 낭패의 사정을 알리자 이틀 뒤에 같은 설치회사의 다른 팀을 보내 주었고, 구멍을 뚫어 직접 배선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설치를 완료했다. 먼저 팀도 할 수 있는 방식이란다. 이번 팀도 벽 속의 파이프 상태는 보장할 수 없다며 여전히 책임 회피의 여지는 남긴 뒤, 찬 공기가 충분한지 꼼꼼히 확인하지도 않고 서둘러 떠났다. 전선과 배관을 가리는 뚜껑을 제자리에 끼워달라는 요청을 듣는둥마는둥 먼저 팀이 어떻게 했는지 딱 맞는 못 등 부속이 없다며 마무리 작업도 하지 않은 채였다.  

막 출간된 내 책 '서울, 고뇌에 젖어'를 친구들에게 선물하려고 몇 권 구입하러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렀다. 분명히 입점됐을 그 책은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점원의 도움으로 찾아낸 그 신간은 엉뚱하게 정치 섹션의 구석진 서가 맨 아래에 잘 보이지 않게  숨어 있었다.  내 책은 수필과 칼럼을 모은 것이므로 정치 섹션에는 맞지 않는다.  

점원들이 모여있는 데스크에 가서 몇 권을 더 주문하면서 왜 신간이 구석에 처박혀 있느냐고 묻고, 일반인들이 신간을 볼 수 있게 할 수는 없느냐고 정중하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그들의 변명은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책이 많이 있어야 앞에 쇼윙을 하는데 출판사에서 적게 보냈다”는 것이다. 출판사측에 알아보니 교보가 이 책을 그나마 많이 구입해 간 것이란다. 점원들에게 풍문에는 “50만원에서 300만원까지 자리세를 내야 눈에 잘 띄는 앞 진열대에 오른다” “그것도 자리가 없다”는 소문이 자자하다고 전하자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고 짜증스런 표정으로 싸우려는 듯 덤벼든다.

그 다음 주에 교보에 들렀지만 주문한 책은 아직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날 주문을 채근한 후 3일이 지나서야 겨우 책을 입수하게 되었다. 계속된 무성의에 너무 불편해서 몇 마디 쓴소리를 남겼다. “교보는 한국의 대표적인 서점으로 컸다. 출판물의 유통은 일반 소비재 판매와는 다른 성격이 있다. 대중에게 출판물을 통해서 한국의 여러 문화를 제공하는 한편, 대중을 이끌어가는 소명도 있다. 쓰레기 같은 책도 범람하지만 훌륭한 내용이 담긴 양서도 많다. 그런 좋은 서적들을 잘 알려서 제공해야 하고, 더 나아가 세상이 깊이 새기고 지성을 쌓을 양서를 개발하도록 밑걸음이 돼야 하지 않겠는가. 앞에 진열된 책 중에는 가볍고 인기 영합적인 책들이 범람하는데 교보가 상업주의에 빠져 자리세나 받고 영업에만 혈안이 돼서야 이나라에 미래가 있겠는가?”라고 작심하고 충고했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듣는 표정이었다.

정치에 몸 담았던 모 인사의 책은 사시장철 베스트 셀러 섹션에 몇 무더기씩 쌓여 있는데, 알려지기로는 한달에 300만원 정도를 교보에 자리세를 낸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렇게 해서 책장사를 하고, 서점은 부수입을 챙기는 꼴이다.

에어컨 설치기사와 유명 서점의 어긋난 행태는 자신들의 본분을 소흘한 데서 나온 흔한 예다. 기사는 설치를 완벽하게 설치하는 게 임무고, 그래야 보수를 받을 수 있으며, 소속된 회사도 영업을 이어간다. 기술이라는 쥐꼬리 만한 권력을 잡고 다른 가능성이 있는 데도 일을 완수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누를 끼치면 어떻게 되겠는가. 서점도 책을 파는 본업에 충실하지 않고 상업적인 계산에 눈이 멀어 서적의 유통과정에서 사업적인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그들이 부인하지만 자리세를 받는 병폐와 진열을 임의로 정하는 횡포는 업계에서는 공공연히 회자되는 관례라고 알려져 있다.

위의 두 가지 사례는 언뜻 사소한 일 같이 보인다. 또 거기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큰 책임을 따질 만큼 위중한 시비거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들 뒤에 도사리고 있는 이기주의의 힘줄, 곳곳에서 세상의 원활한 흐름을 갉아먹거나 멈추게 하는 상업적인 비수들은 주변에  널리 퍼져있는 독소들이다. 그런 작은 권력의 병원체들이 세상의 혈관에 혈전처럼 붙어있거나 떠돌면서 건강한 사회, 활기찬 사회의 장애가 된다.

큰 권력이 제격에 맞지 않게 도를 넘어 마구 휘두르는 횡포와 독재도 문제지만, 주변의 작은 권력들이 소소한 우월성으로 남을 제압하려는 불편함도 우리의 삶과 공동체의 기분을 우울하게 만든다. 크고 작음을 막론하고 권력이란 분수를 모르면 해악이 된다. 겸손하게 최선을 다 하는 자세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것이다.

송장길(언론인·수필가) womaneconom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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