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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톤 박경준 “첫 실패 안겨준 '레나토의 아리아' 제겐 보약이 됐어요"

기사승인 2018.10.04  17: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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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일 ‘라벨라오페라단 그랜드 갈라 2탄-베르디 vs 바그너’ 공연서 인생노래 불러

바리톤 박경준이 2일 서울 서초구 라벨라오페라단에서 오는 12일 열리는 ‘그랜드 오페라 갈라 2탄-베르디 vs 바그너’ 무대에서 맡은은 ‘가면무도회’의 레나토 역을 소개하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gmail.com

"첫 실패를 안겨준 곡과 가장 애착이 가는 배역의 곡을 한무대에서 동시에 부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뜁니다."

‘오페라와 썸타는 남자’로 유명한 바리톤 박경준이 오는 12일 열리는 라벨라오페라단의 '그랜드 오페라 갈라 2탄-베르디 vs 바그너’를 앞두고 설레는 마음을 살짝 드러냈다. 그는 지난 2년 동안 오페라 공연을 위한 사전 해설프로그램 ‘오페라와 썸타는 남자’를 진행해 '오썸남'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이번 공연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전혀 다른 음악 스타일을 선보인 베르디와 바그너의 대표작에서 뽑은 노래로 꾸민 콘서트다. '라 트라비아타' '가면무도회' '나부코' '리골레토' '일 트로바토레' '아이다' '로엔그린' '탄호이저' '트리스탄과 이졸데' '발퀴레' '신들의 황혼' 등 두 거장의 명품오페라 속 베스트송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부리부리한 눈매와 다부진 몸매의 박경준을 지난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라벨라오페라단에서 만났다. 그동안 크고 작은 무대에 숱하게 오르며 '베테랑의 반열'에 오른 강심장이지만, 이번 음악회가 특히 기다려지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수줍은 모습을 보였다. 그는 ‘가면무도회’의 레나토와 ‘리골레토’의 리골레토로 변신해 두곡을 노래한다. '인생노래'와 '인생배역'을 동시에 방출하는 셈이다.

◆ "1등만 하던 제게 첫 실패감 안겨준 곡, 관객 앞에서 다시 노래합니다”

"대학교 때 중앙콩쿠르와 KBS콩쿠르 등에서 1등을 했어요. 나갔다하면 우승을 했으니 요즘말로 잘 나가던 시절이었죠. 그런데 한 콩쿠르에서 뼈아픈 시련을 맛봤어요. 예선에서 계속 1등을 했는데 막상 본선에서는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거예요. 선곡을 잘못한거죠. 제 목소리가 그 노래와 맞지 않는다고 주위에서 말렸는데 걱정말라며  고집을 부렸어요. 결국 3등을 했어요."

이때 부른 노래가 베르디의 '가면무도회'에 나오는 레나토의 아리아 ‘일어나라, 너의 아들로부터...그대는 내 명예를 더럽혔도다(Alzati! La, tuo figlio...Eri tu che macchiavi quell'anima)다. 바리톤이라면 누구가 욕심 내는 명곡이다. 

상처는 깊었고 겁이 났다. 오랫동안 이 곡에 도전하지 않았다. 하지만 평생 이 노래를 부르지 않을수는 없는 법. 올해 4월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선정된 '가면무도회'의 레나토 역할을 덜컥 수락하면서 힘겨운 싸움이 시작됐다. 준비하는 내내 밥을 못먹을 만큼 긴장의 연속이었고 무대에 오르는 순간에도 덜덜덜 떨었다. 하지만 역시 박경준 이었다. 트라우마를 말끔하게 극복하며 '브라보 세례'를 받았다. 가장 사랑하는 친구 리카르도와 가장 사랑하는 아내 아멜리아에게 배신당한 고독한 사내의 심정을 절절하게 표현했다.

다시 우뚝 설 수 있었던 이유는 지독한 연습의 결과였다. 평생의 멘토인 서울대 이인영 교수의 가르침대로 '안되면 1000번을 해보고, 또 안되면 2000번까지 해보는 정직한 연습의 승리'였다. 이 일을 계기로 연습의 소중함과 함께 겸손의 미덕을 배웠다. 제대로 보약이 된 셈이다.

그는 "실패를 안겨주고 또 음악열정을 깨우쳐준 인생아리아를 다시 한번 관객에게 선사하는 자리인 만큼 퍼펙트한 공연을 위해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준비하고 있다"며 "박경준 만이 할수 있는 나만의 레나토를 선보이게 돼 기쁘다"며 환하게 웃었다. 

박경준은 '리골레토'에 나오는 4중창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그대(Bella figlia dell’amore)’도 부른다. 솔직히 이 노래는 테너·소프라노·메조소프라노에 비해 바리톤 파트의 비중이 적다. 하지만 그에게 리골레토 역할은 인생배역이다.

“가장 애정이 가는 롤입니다. '리골레토'가 있기 전까지 바리톤은 소프라노와 테너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죠. 조연에 불과하던 바리톤을 당당히 주역으로 끌어올려 준 역할이 바로 리골레토입니다.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동시에 코믹한 성격의 주인공이죠. 이처럼 다양한 매력을 만나볼 수 있는 캐릭터는 흔하지 않아요."

바람둥이 만토바 공작에게 마음을 빼앗긴 질다. 공작이 또다른 '먹잇감' 막달레나를 유혹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괴로워하는 질다. 그런 순진한 딸 질다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불같은 사랑을 만류하는 아버지 리콜레토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지 기대된다. 김중일(테너), 김성혜(소프라노), 김소영(메조소프라노)과의 멋진 화음은 생각만해도 원더풀이다.

바리톤 박경준이 2일 서울 서초구 라벨라오페라단에서 "공연 2주 전에는 전화통화도 자제할 만큼 남다른 자기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gmail.com

◆ 공연 전 2주 동안은 전화통화도 자제...'남다른 자기관리'로 롱런

박경준은 '바른 남자'다. 지금까지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 비법은 바로 남다른 자기관리다. 공연 전 2주 동안은 전화통화까지 삼갈 정도로 목 관리에 열중한다.

“좋은 노래를 위해서는 ‘절제’가 가장 중요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최대한 목을 아낀 후에 무대에서 그동안 모아놓았던 에너지를 폭발시키려고 노력합니다.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관객들이 각종 미디어를 통해 성악을 보고 들을 기회가 많고, 또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즐길 기회도 많습니다. 교회에만 가봐도 항상 있는 게 성가대와 오케스트라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관객에게 엄청난 신비감을 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가곡이나 아리아의 감정만은 전달하고 싶어요. 이를 위해서는 일상생활에서 포기해야할 부분이 분명히 있고 그것을 기꺼이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시끄러운 장소를 피하는 것은 물론 술과 담배도 입에 대지 않는다. 목이 생명인 그에게 담배를 피우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어디 이뿐인가. 심지어는 비속어도 내뱉지 않는다. 박경준은 “저만의 목관리 팁이라기엔 사소하지만 평소에 비속어를 쓰지 않는 것은 조금 특별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면서 “비속어를 입에 담게 되면 언성이 높아지고, 언성이 높아지면 목에 무리가 올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항상 조심하는 편이다”고 말했다.

바리톤 박경준이 2일 서울 서초구 라벨라오페라단에서 "관객의 미소와 눈물이 저를 가장 기쁘게 한다"며 오는 12일 열리는 갈라 콘서트 무대에 서는 설렘을 밝히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gmail.com

◆ “관객의 미소와 눈물이 저를 가장 기쁘게 하죠”

뜻밖에도 무대에 선 그를 가장 뿌듯하게 하는 것은 박수갈채가 아니다. 그는 “아는 분들이 많이 오면 박수 소리야 커지겠지만 저를 가장 기쁘게 하는 것은 '관객의 조용하지만 강한 호응'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노래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부분이 잘 전달됐을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며 “기쁨을 표현하면 같이 하하호호 즐거워해주고, 슬픔을 표현하면 함께 눈물을 흘려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제가 아무리 기쁨, 고통, 분노를 다르게 표현해봤자 관객이 공감하지 못하면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냥 소음과 똑같잖아요. 그런데 '반신반의’하며 노래를 하다가도 관객이 호응을 하면 ‘아 통했구나!’ 하는 생각에 소름이 삐쭉삐쭉 돋습니다. 완벽한 카타르시스죠. 그래야만 관객과 시선을 맞추며 최상의 몰입을 하게 됩니다."

바리톤 박경준이 2일 서초구 라벨라오페라단에서 "라벨라는 남다른 팀워크와 한결같은 신념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번 들어오면 쉽게 떠나지 못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문인영 기자 photoiym@gmail.com

◆ 오로지 실력으로만 꾸려진 라벨라오페라단…떠날 수 없는 이유

박경준은 이번 갈라에 참여하게 된 이유로 '라벨라오페라단의 남다른 팀워크'를 꼽았다. 그가 라벨라와 오랜 인연을 유지하는 데에는 이강호 단장의 공이 가장 컸다. 1998년 오페라 ‘이순신’에서 이 단장을 처음 만난 그는 한결같은 신념을 유지하는 매력에 끌려 계속해서 호흡을 맞추고 있다.

박경준은 “이 단장의 가장 큰 장점은 성악가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이다”라면서 “(이 단장은) 아무리 스펙이 좋은 음악가라고 해도 본인이 보고 느껴야만 팀원으로 선발하기 때문에  팀워크가 좋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좋은 대학 출신, 해외 유학 경력 등도 이 단장에게는 중요한 척도가 아니다. 오로지 실력만으로 사람을 뽑는다고 덧붙였다.

“한 단체가 오랜 시간 모든 공연에서 일정한 예술성을 유지하는 것은 사실 어려워요. 하지만 라벨라는 메인과 메인이 아닌 공연 구분 없이 지나고 보면 모두 훌륭한 무대가 완성되는 마법이 있어요. 이 단장의 신념이 라벨라의 성악가들을 떠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음악가들 사이에서도 이제는 음악가로서의 존중, 끈끈한 의리가 생겼어요."

혹시라도 박경준의 노래를 듣지 못했다면 오는 12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로 가보자. 소프라노 김현경·강혜명·김성혜·이미경, 메조소프라노 김소영, 테너 김중일·이현종, 바리톤 박대용 등의 꿈의 콘서트가 펼쳐진다. 연출·해설은 안주은, 지휘는 양진모가 맡는다. 프라임필오케스트라와 메트오페라합창단도 함께 한다.

윤아름 기자 aruumi@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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