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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장길 칼럼] 멀리 보이는 북한

기사승인 2018.10.04  07:5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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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문제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정부의 주요한 의제가 될 것이다. 정부는 이런 남북문제에서 북한의 실체와 미래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평가를 펴고, 그 바탕 위에서 모든 대북 노선의 기준을 세워야 할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동쪽 버클리 뒷산에 오르면 시야가 드넓다. 청명한 하늘 아래 골든 게이트와 베이 브리지로 연결된 샌프란시스코만이 그림처럼 넓게 펼쳐져 있고,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피드몬트와 오클랜드, 알라메다를 너머 산호세와 실리콘밸리가 까마득히 가물거린다. 요즈음 IT와 고도의 서비스 산업으로 미국과 세계를 선도하고 있는 상항만 일대(Bay Area)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수려한 경관이지만 도시 안에서는 불꽃 튀는 경쟁과 세계의 정상을 겨루는 첨단기술이 번득이는 곳이다.

‘이런 발전의 뿌리는 무엇일까’에 생각이 미치면 승승장구한 미국의 역사가 역력히 떠오른다. 초기에 목화와 담배의 수출시대를 거친 다음, 철강과 석유, 전기, 철도, 항공, 영화, 그리고  자동화된 대량생산 시스템에 힘입어 거대한 제조업을 일으켜 지구촌 최강의 부국이 되고 리더가 된 역사이다. 그런데 제조업의 저조를 겪는 오늘날 골드 러시를 불렀던 이 지역에서 제조업 대신에 첨단기술의 깃발이 몰려오다니 흥미로운 일이다. 이 지역에서 성장한 휴렛패커드와 구글, 애플, 패이스북, 테슬러, 우버 등은 기술을 캐는 새로운 골드 러시로 세계의 신경제와 문화를 견인하고 있지 않은가. 

거대한 미국의 산업과 국력을 헤아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구촌의 거시경제와 국제정치 지형에 관심이 꽂힌다. 특히 동북아시아 지역은 요즈음 미·중 사이의 무역분쟁이 고조됐고, 북핵문제 때문에 한반도 주변의 정세가 복잡해져서 난삽한 의문이 꼬리를 문다. 미국과 중국의 긴장은 어떻게 전개될까, 한반도의 장래는 어떤 모양으로 펼쳐질까, 북한의 미래는 무엇일까 등의 의문과 걱정이 뇌리를 가득 메운다. 

미국에게는 중국이 GDP 총량으로 20조 달러 :  14조 달러 정도로 치고올라와 G1의 자리를 내줄까 매우 부담스러워졌다. 냉전체제에서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키신저의 방중 이래 중국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했으나, 중국이 G2로 성장한 뒤 팽창주의의 야심을 보이고 있어서 우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을 앞서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경계심도 부쩍 높아졌다. 중국이 시장경제를 수입해 급성장하면서도 사회주의 체제를 견지하면서 국제무대에서 사사건건 미국과 엇박자를 내고, 일대일로와 AIIB계획 등으로 팽장주의적 성향을 들어내고 있기에 고민스러워진 것이다. 미국이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어긋나는 세력에는 단호하게 대응했던 전례와도 맥을 같이한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중국 견제 포위망의 척후대에 한반도가 자리잡고 있는데, 그 곳이 지금 요동치고 있는 형국이다. 기실 한반도는 미국에게는 소련과 중공 등 공산주의의 남진을 막는 방파진으로서의 전략 기지였다. 오늘날은 러시아보다 중국이 더 걱정거리가 됐지만, 북방의 사회주의와 전체주의의 방패로 보는 전략적 가치는 변함이 없다. 다만 한반도 전략의 패키지 안에서 북한이라는 변수가 핵무장을 치고나옴으로써 함수관계와 방정식의 공식이 바뀌었을 뿐이다. 미국의 새 전략적인 공식은 무엇일까?

미국이 이끄는 국제세력의 바둑판에서 북한문제는 대마가 아니었다. 선수는 중동과 러시아를 제어하는 포석에 두고, 다음 수순 정도로 남겨놓았었다. 부시나 클린턴, 오바마 대통령 등도 해결을 미루었지 않았던가. 트럼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들을 폄하하면서 자신이 해결사임을 부각시키지만, 북한의 탄두유도탄이 미국 본토까지 겨냥할 수 있다는 우려가 뜨자 그 타이밍을 절묘하게 잡은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핵문제는 6자 회담을 벌이는 등 국제사회에서 가벼운 현안은 아니었지만, 북한이 ICBM 실험을 감행한 뒤에는 긴장이 더 고조되어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 문제를 위급한 상황으로 인식하지 않았다면 직무유기로도 몰릴 수 있을 만큼 여론이 비등했다.  

북한은 미국의 적수가 되기에는 터무니 없이 모자란다. 세계 최강국이 최하위국과 맞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제규모는 미국이 20조 달러로서 어림잡아 300배가 넘고, 군사비는 6000억 달러 : 11억 달러 정도임으로 상대가 될 수 없다. 핵무기는 북한이 10개 남짓 보유했다손 치더라도 5000:10인데, 북한은 시험단계이므로 그 위력에서는 족탈불급일 것이다. 또 미국의 항공모함 한 대가 북한을 초토화시킬 수 있다고 알려져 있고, 전략전투기 한 대로도 북한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수 있다고 전해진다. 외교적으로 또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표현을 삼가는 것이지 북한은 미국의 티눈 정도의 성가심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북한은 본토를 공격하겠다고 협박을 일삼았다. 미국의 MD와 요격 시스템도 허수아비 정도로 무시하고 내지르는 협박성 강변이었다.

언뜻 보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1:1로 대등한 협상을 펴는 듯이 착각할 수 있다. 물론 국제질서에서 평등원칙에 따라 국가 대 국가 간의 타협은 대등해야 한다. 그러나 국제관계의 냉엄한 현실에서는 그러한 명분은 공허하기 일쑤다. 미국은 북한을 존중할 만한 국가로 상대하려는 입장보다는 문제를 해결(Trouble Shooting)하기 위한 대상으로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운 놈에게 떡 하나 더 준다는 격언에 맞는다고 할까. 그동안 북한이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파기하고, 테러행위와 불법 거래 등 수많은 비리를 저질러 왔기 때문에 자업자득이다. 신용불량을 씼어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김 위원장을 치켜세우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사야말로 협상가의 노회한 수사에 불과하다. 김 위원장이 아무리 버티려 해도 힘의 위력은 작동할 것이고, 강국과 약소국의 차이는 피할 수 없는 냉엄한 현실인 것이다.

미국시민들의 북한에 대한 비호감은 급격히 상승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국가의 첫째이고(75%-이코노미스트지), 북한이 남한을 공격하면 64%가 미군의 응전에 찬성했다(시카고 트리뷴지).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에는 74%가 지지했고, 북한이 비핵화를 거부하면 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은 84%나 높았다. 북한 정권은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한다는 의견도 쉽게 만날 수 있다. 피드몬트 공원에서 산책 중에 만난 한 백인 지식층 노인은 “김정은 정권은 세계에서 최악의 정권이다” “21 세기에 어떻게 그런 집단이 존재하는가?” “미·북정상회담이 열리더라도 미국이 절대 너그러워지면 안 될 상대다”라고 경계한다. 버클리에서 만난 아들네의 젊은 이웃은 “북한 정권은 결국 지구상에서 사라질 정권이 아닌가요?”라고 물었다. 그들과의 많은 대화 속에서 그런 생각들이 한 두 사람의 꾸며진 말이 아니고 미국인들의 일반적인 견해라는 인상을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북한을 무력으로 위협해서 항복을 받아내려 했다. 그러한 미국의 극약 처방은 상당한 효험을 보았다. 생멸의 위협을 느끼고 경제적 위기도 맞은 김 위원장이 협상 테이블에 적극 나선 데는 미전략폭격기와 항모 등의 위협과 국제 규제의 약발이 주효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회유하지 않았다면 김 위원장의 타협의 행보는 더 가벼웠을 것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아쉬워한다. 

북한의 비핵화를 끌어내려는 미국의 결심은 단호하다. 비핵화는 트럼프 정권의 물러설 수 없는 어젠다가 돼버렸고, 미국인들의 여론이 뒷받침하고 있으며, 국제사회의 기대와 요구도 높다. 돌이킬 수 없이 굳어진 공론화이자 압박이 된 것이다. 만일 김 위원장이 그의 선대인 김정일 전 위원장의 전철을 밟아 속임수를 쓴다든지, 약속을 파기한다면 국제사회의 치명적인 보복을 당할 것이다. 김 위원장도 그런 처지를 잘 파악하고, 회담에 전향적으로 임하리라 여겨진다. 타협하면 살고 배반하면 죽는다는 상황인식은 갖고 있을 것이다. 비핵화와 종전선언을 놓고 밀고당기기는 지금까지로 충분히 성과를 얻어갔다. 더이상 욕심을 내거나 고집을 부리면 판은 깨지고 전운까지 감당하게 될 지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를 이루게 한 다음, 국제사회에 끌어내서 개방된 체제로 유도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는 듯하다. 한국 등 주변 여러나라들의 지원을 권유도 하고, 미국 기업의 진출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여정에는 북한이 자유화 바람을 어떻게 소화하느냐에 따라서 정권의 안위가 걸려 있는 만큼, 어느 수준까지 북한이 수용하겠는가 하는 전제가 붙고, 그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급하다고 여기면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 공산주의와 전제주의 통치의 속성 아닌가. 

한국정부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일단 전쟁을 예방하고 대화의 장을 연 중재역할은 평가할만 하다. 특히 평화적인 해결의 물꼬를 튼 행보는 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앞으로 미·북정상회담이 국민이 바라는 방향으로 성과를 거둔다면 더 박수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정상회담의 과정에서 대화 자체를 성공시키기 위해 70년 간의 분쟁 동안 쌓인 국민 감정보다 너무 앞선 언행을 보인 점을 많은 국민들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음을 간과하면 안 된다. 또 야당을 비롯한 상당한 국민들이 내용없는 회담이라든지, 안보상의 지나친 양보가 이뤄졌다는 지적, 그동안 저지른 북한의 도발에 사과도 없이 면죄부를 준 격이라는 주장, 무모하게 친북 분위기가 한국사회에 조성되고 있다는 우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런 의견들을 정치적으로 매도해버리면 저항을 부르기 마련이다. 안보만큼 국가의 기본이 되는 중요한 방책에서는 다소 느리더라도 대의민주주의를 존중하는 등 국민적인 합의가 중요하다. 중의만이 정책의 정통성을 담보하게 된다. 

남북문제는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정부의 주요한 의제가 될 것이다. 정부는 이런 남북문제에서 북한의 실체와 미래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평가를 펴고, 그 바탕 위에서 모든 대북 노선의 기준을 세워야 할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자유민주주의의 국체가 조금도 훼손되지 않아야 되며, 그런 헌법적인 정체성에 준거해서 멀리는 통일까지를 염두에 두고 차분하게 대처해야 한다. 비핵화와 평화, 대화, 협력이 우선 시급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바탕에는 좌표의식과 원대한 설계가 단단하게 정립돼 있어야 하며, 그 위에서 올곧고 튼튼하게 진전돼야 국민이 바라는 대로 국가와 사회의 미래에 초석을 다지게 되지 않겠는가.  

송장길(언론인·수필가) womaneconom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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