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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장길 칼럼] 다시 사회통합을 갈망하며

기사승인 2018.10.12  08:3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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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통합은 국가의 존재이유와도 관련된 심각한 과제다. 분열과 갈등으로 갈갈이 찢긴 공동체에서 무슨 행복이 깃들겠으며, 행복이 없고 의욕이 나지 않는데 발전의 원동력이 어디에서 솟겠는가? 사회통합은 나라의 최우선 명제가 아닐 수 없다. /여성경제신문 자료사진

한국사회에서 사회통합은 오래된 화두이자 숙원이다. 분열과 대립이 이어져 극심한 내부의 혼란과 사회적 비용으로 괴로웠기 때문이다. 건국 전부터 신탁통치와 정부수립 방법 등으로 나뉘어져 극심한 반목을 겪더니, 대한민국 출범과 한국전쟁으로 잠시 큰 물결로 합쳐지는 듯 하다가 정파 갈등, 권력 갈등, 지역 갈등 등이 계속 이어졌다. 부패정권과 권위주의에 맞서는 과정에서는 4·19와 6·3, 광주 사태 등 엄청난  충돌과 희생, 변혁의 계절을 맞았다. 온나라가 지반이 들썩거릴 정도의 일대 혼동들이었다. 정권교체로 이어진 광화문 촛불 이후 이제는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국가 전체가 서로 등을 돌리고 으르렁거리고 있다.

한국이 특히 심한 사회적 파열을 자주 겪는 배경에는 조선조부터 당파싸움에 이골이 난 유산도 있겠지만, 유교식 권위주의의 잔재와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는 부패의 관행에 대한 거센 저항도 작용했다. 또한  해양에서 건너온 자유주의와 북방에서 내려온 사회주의가 반도에서 맞부딪쳐 빚은 이념 충돌의 골은 깊고 깊어서 걸핏하면 떼지어 증오하고 싸우는 갈등의 웅덩이가 되었다.

자유와 평등의 불협화음은 한국전쟁이 휩쓸고 간 뒤에도 사회의 저변에 잠재해 있다가 틈새를 비집고 불거지곤 한다. 그 하나인 북풍은 언제나 으스스하고 혐오스러웠다. 그런 와중에 남한은 경제적 퀸텀 점프, 도약을 이루어 번영과 긍지를 구가한다. 대립은 계속 변모돼 보수는 성장을 견인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치중하는 반면, 진보는 성장의 그늘에 시선을 꽂아 사회주의의 바탕인 평등과 분배에 텃밭을 가꾸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내놓은 경제정책들은 다분히 분배에 역점이 주어졌고, 야권은 성장의 관점에서 강하게 저항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계획의 파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세수로 일자리를 늘이는 시책 등이 평등에서 발아한 진보적 정책들이다. 남북대화에 집권세력이 적극적이고, 야권은 비판적인 점도 북한을 대하는 온도의 차이라는 점에서 같은 맥락이다. 야권은 불경기가 세계경제에 역행하는 것으로 경제정책의 실패에 기인한다면서, 국가경제의 난조를 부각시킨다. 남북문제에도 남한의 안보를 우선하는 태도에서 자유주의에의 방점이 읽힌다.

자유와 평등은 인류가 오랜 역사를 통해 추구하고 경작해 온 사회적 가치의 양대 축이다. 두 가지 명제가 균형을 이루면 사회를 건전하게 지탱하고 국민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소중한 기둥이 되는데, 유독 한국에서는 서로 피터지게 싸우므로서 갈등을 높여왔다. 이율배반성이 있는 만큼 동시만족은 어렵지만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 견제하고 보완해 나가면 정반합의 원리로 사회발전의 추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서로 지나치게 경쟁하고 공격하는 대상으로 삼으면 갈등만을 증폭시킨다.

한국의 정치는 아이들에게는 차마 보이기도 민망한 극악스러운 언어로 상대방을 매도하며 공격을 일삼는다. 집권 진보진영에 합류해 있는 운동권 인사들의 투쟁적 성향이 한국정치를 더 공격적으로 몰았다는 분석은 가슴 아픈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서로 존중하고 서로 양보하던 전통사회의 미덕은 잠수해버리고, 정략적인 진영논리만 까칠하게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진보 여당은 보수를 궤멸시키고 50년을 집권하겠다는 무모한 인사를 대표로 뽑았고, 야권은 무너진 진용도 정비하지 못 한 채, 전대협 출신 등 주사파에 둘러싸인 정부가 종북 사회주의 국가로 나아간다고 몰아친다.

대통령은 협치를 강조하면서도 의회와 야당을 고비마다 무시해버리는 입장이고, 야권은 대통령의 높은 지지도에 주눅이 들어 제대로의 요구도 못 하면서  내부의 갈등까지 겹쳐 속앓이를 거듭하고 있다. 대통령은 야권의 참여없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의 이벤트를 국민의 심판을 들먹이며 국회 비준을  요구하고 있고, 야당은 북한의 노림수에 말린다고 베트남 식의 공산화까지 우려한다. 대통령은 국회 청문회 결과를 무시하고 사법부의 수장과 장관 등 요직의 임명을 강행했고, 야권은 정부의 독주를 견제하는 기능에 특단의 전략없이 빛바랜 정치공세에만 몰두하고 있다.

청와대는 소득주도성장론과 최저임금인상 등 경제정책의 여파로 경기가 바닥인 데도(IMF는 올해 성장률이 2.8%, 내년은 2.6%로 떨어진다고 전망) 막무가내고, 야권은 세계적인 호황에도 한국만 불황이라면서 정부의 실책으로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공격을 퍼붓고 있다. 시민단체 출신들이 주축인 집권층의 경제팀은 국가경제의 주역들인 재벌의 소유권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고, 야권은 그런 사회주의 성향이 투자를 위축시키고 국가경제의 미래를 갉아먹는다고 비난한다.

한치의 타협도 없는 대결 양상은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려 국가의 모든 하위조직과  일반 국민들에까지에도 만연해, 보이거나 보이지 않게 친정부와 반정부로 완연히 갈려져 있다. 행정부와 사법부 공무원 조직도 출신성분과 과거의 이력 등에 따라 암묵적으로 나뉘어 편가르기가 횡행하고 안기부와 검찰, 경찰 등 권력기관도 새 술을 넣을 새 부대로 바뀌는 바람을 타고 친정부 성향을  두드러지게 보인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정권교체에 따른 정책과 인사의 환치현상으로서는 선진국에서는 보기 드문 지나친 물갈이와 그에 대한 저항이다.

세상의 창문인 언론도 공정성을 잃고 보도와 평론에서 선전매체나 공격수처럼 구역질이 날 정도로 편향적이다. 한겨레신문과 JTBC는 특히 여권의 총대를 자청한 듯한 인상을 받을 정도로 친여적이고 지상파와 종편들, 경향신문과 서울신문 등도 친여성이 짙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은 보수언론으로 찍혀 회자되고, 유튜브로 방영되는 1인 주도의 보수성 인터넷 방송에서는 보수논객임을 자임하며 비판기능을 넘는 날카로운 공격성을 감추지 않는다.

친여든 친야든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은 언론은 언론이 아니라 독성을 품은 전단이고 선전매체에 불과하다. 옳은 건 옳게, 잘못된 건 잘못으로 판단하고 정도를 걸어야 세상의 목탁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자주 인용되는 가디언지의 편집장 찰스 스캇이 말한 “평론은 자유이고 사실은 성역이다”라는 표현에서 자유는 방종이 아니고, 피해를 주지 않고 책임을 동반하는, 고도의 절제된 자유를 뜻한다.

경제계, 교육계, 예체능계 등 사회 구석구석까지에도 분파와 반목, 편애가 성행한다고 전해진다. 친목모임에서도 온통 누가 어느 편에서 무슨 짓을 했는가가 화제다. 온나라가 운동장에 모여 열띤 경기를 보고 있는 형상이다. 자라는 미래세대에게 이렇게 오염되고 병든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

분열과 갈등은 그 후유증이 깊고 길어지므로 더욱 걱정을 높인다. 계투 같은 정치싸움의 결과로 한국정치는 국가의 미래를 여는 정책개발 대신에 보복의 정치, 투쟁의 정치, 비속한 정치를 낳고, 경제는 국제 경쟁력을 잃으며 자꾸 추락한다. 사회와 문화가 지리멸렬함에 따라 국민들 속에 험준한 반목의 산맥이 무수한 계곡을 파며 굳어지고 있다. 누구를 위한 경쟁이고, 무엇을 위한 싸움인가?  오늘날 한국사회의 구겨진 현실이며, 질곡의 좌표이다.

누가, 어떻게 이 깊어지는 중병을 치유할 수 있을까? 온 국민이 소스라치게 깨닫고, 모두 나서지 않고서는 풀기 어려운 난제다. 사회 곳곳에 퍼져서 박혀 있는 질병이기 때문이다. 그 사회운동을 이끌 수 있는 위치에 대통령이 있고, 정치 지도자들이 잠재해 있으며, 각 분야의 지도급 인사들이 가능성을 안고 자리하고 있다. 누구든 올바른 자세로 뜨겁고 진솔하게 기치를 들고 나서면 호응을 받게 됨은 상식이고 철리다.

대통령은 엄청난 권력의 정점에 있으므로 사회통합의 책임을 가장 절실히 느껴야 할 직위다. 거대한 조직과 예산, 권위, 인사권, 각종 기회를 틀어쥐고 있으므로 마음만 먹으면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남북문제와 경제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건강한 사회통합이 이뤄지지 않고서는 그런 어젠다도 온전히 성공하기 힘들고, 설사 어떤 형태의 성취가 이뤄지더라도 뿌리 깊은 나무의 소담한 과실이 될 수 없다. 역사가 그 공과를 명백하고도 준엄하게 평가할 것이다.

사회를 정화시키려는 적폐청산도 사회통합을 고려해 추진돼야 한다. 적폐청산은 말 그대로 부조리한 폐단의 누적된 고리를 없애는 것이다. 제도를 바꾸는 것이고, 또 그렇게 해야한다. 사람을 정리한다고 질병이 완치되지는 않는다.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지금의 현실은 관련자를 처벌하는데 치우쳐 있어서 또다른 앙금의 여지를 낳고 있다. 정지적 정지작업의 일환이라는 비난을 겸허하게 경청해야 한다. 

의회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와 사회의 건강한 운동의 산실이자 보루다. 아무리 삿되거나 정파적인 기도가 파도치더라도 의회주의가 서릿발처럼 준엄하면 제압해버릴 수 있다. 사회통합이 국민을 행복하게 하고, 건전한 세상을 건설한다는 당위성이 제기되면 당연히 국민의 대의기관인 의회가 나서서 그 민의를 수렴하고 재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를 게을리 하면 직무태만이고, 직무유기다. 미국은 가지가지 이질성이 엉켜 난마가 돼 있어도 의회가 서슬 퍼렇게 살아 있어서 부글거리는 난삽한 문제들을 수렴, 여과하므로서 그 큰 국가가 건강하게 유지, 번성하고 있다.

사회통합은 국가의 존재이유와도 관련된 심각한 과제다. 분열과 갈등으로 갈갈이 찢긴 공동체에서 무슨 행복이 깃들겠으며, 행복이 없고 의욕이 나지 않는데 발전의 원동력이 어디에서 솟겠는가? 사회통합은 나라의 최우선 명제가 아닐 수 없다.

국가적인 소명에는 온 국민이, 특히 사회에 영향력이 있는 지성인들이 크게 각성하고 모두 옷깃을 여미어야 한다는 것이 시대의 요구다. 대가도 없고 빛도 없는 듯한 이 과제에 몸을 던지는 훌륭한 인사와 자세, 그 움직임은 국가와 사회, 그리고 역사가 반드시 기억할 것이다.         

송장길(언론인·수필가) womaneconom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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