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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새 생일

기사승인 2018.10.19  07:5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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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는 부끄럽다. 자식에게 살아가는 방법을 뒤늦게 배워야겠다는 뉘우침이 너무 버거워서다. 그래, 아비보다 나아야 자식이지. 그걸로 효도는 마감이다. /여성경제신문 자료사진

딸은 많이 참는 편이다. 주변에서 불쾌하거나 힘든 일이 일어나도 웬만하면 자신이 감당할 몫으로 받아들이고 침묵한다. 그래서 견디기 어려운 일을 겪었음을 한참 뒤에 알게 될 경우가 종종 있다.

대학 다닐 때 학교 캠퍼스 내 길가에 주차한 승용차 안에서 강도를 당했을 때도 그랬다. 귀갓길에 운전석에 앉자마자 흑인 강도가 창문을 열도록 권총으로 위협하며 손가방을 뺏어 달아났다. 학생이라 소지품은 많지 않았지만 권총강도를 당한 일이 여린 여대생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겠는가. 그런데도 딸은 부모에게 바쁜 일에 방해 될까봐 알리지도 않았다. 친구를 불러 위로를 받으며 안정을 취하고, 학교와 경찰에 보고하는 등 깔끔하게 뒤처리를 했다.

로스쿨에 다닐 때는 교수를 돕는 아르바이트로 장학금 외에 드는 생활비를 너끈히 충당했다. 그러고도 꼬깃꼬깃 모은 예금으로 집안 일에 급히 필요했던 8000달러를 선뜻 내주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어려운 법과대학원 과정을 마치면서도 시간을 쪼개 부업을 한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딸의 소중한 정성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가 이번에 조금 보태서 선물처럼 건넸더니 잊었다는 표정으로 아비의 손을 부끄럽지 않게 미소로 받아주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정착했으므로 학교수업에서 언어를 가장 힘들어 했다. 대학 시절에는 원어민보다 배는 더 힘들다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교과서 내용을 반복해 읽어야 완전히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짜증내지 않고 잠을 줄여 밤 늦게까지 매진하던 모습이 생각나면 아직도 측은한 마음이 고개를 든다.

배우자를 고르는데 곰보다 여우가 낫다는 말이 있지만, 참는 성품이 꼭 아둔하지는 않는 듯하다. 안팎의 처신이 나무랄 데 없이 바지런하고, 일을 처리하는 모습도 매우 철저하고 분명하다. 학창시절에 기숙사에서 살다가, 또는 결혼 후 분가해서 멀리 살다가 가끔 집에 들르면 시키지도 않는데 소리없이 부엌 살림과 가구를 어떻게 깨끗하고 깔끔하게 닦고 정리해 놓는지 저희 엄마가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변호사 시험에 바로 합격했지만 폭주하는 일과 싸우는 직업에 시달리기 싫다며 공무원의 길을 선택했다. 직장에서도 인정을 받아 고속 승진했고, 미국의 전국에서 50명의 우수 공무원으로 뽑혀 백악관에 초청도 받았다. 젊은 나이에 미 연방정부의 한 부처 서부지역 책임자에 올랐고, 워싱턴으로 올라오라는 권유도 받았지만, 남편과 아이들 교육을 고려해 사양하고 있다. 

부모가 특별히 딸의 교육에 힘쓰지도 못했다. 아비는 사회생활과 생업에 정신이 팔려 아이들을 찬찬히 돌볼 겨를을 내지 못했고, 어미는 힘들어하는 남편을 돕느라고 줄곧 뛰어다닌 여염집 아낙이었다. 다만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길에서 넘어지면 도와주지 않고 스스로 일어나도록 훈련시켰으며, 예의범절은 어디에서도 빠지지 않도록 일러주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유치원 시절부터 선생님이 멀리 보이면 쫓아가서 인사를 했고, 아파트의 놀이터 그네에 매달리면 위험을 무릅쓰고 가장 높이 올라가야 직성이 풀렸다.

캘리포니아 버클리의 아들네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는데 딸에게서 급히 와 달라는 문자가 왔다. 전화가 연결이 안 돼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전례없이 급한 손짓이었다. 아비는 가슴까지 두근거렸지만 책 한권 들고 오라는 붙임말에 초조를 누르며  피드몬트의 딸네로 황급히 차를 몰았다. 딸은 핼쑥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다가 제 차로 얼른 갈아타라고 아비를 재촉했다.

딸은 큰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 석 달 전 잇몸의 혹을 떼는 수술을 받았는데, 당시에 턱뼈가 손상돼서 그곳으로 세균이 심하게 오염됐다는 것이다. 서두르지 않으면 위험한 상태였다. 하도 아퍼서 예약한 대로 아침에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놀라면서 당장 수술을 하지 않으면 큰 일 난다고 닦달을 했다는 것이다. 그 구강(Oral & maxillofacial) 전문의사는 다른 예약을 모두 연기하고 급히 수술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정황을 말하면서 딸은 그래도 애써 담담했다. 의료팀이 준비를 하는 동안 딸은 집으로 돌아와서 남편과 아이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한 뒷일을 대충이나마 정리했던 것이다.

몇 달 전 잇몸수술을 했고, 조직검사 결과도 괜찮다는 얘기까지 들었는데 이게 무슨 일일까? 딸은 직장과 집안 일에 빡빡하게 묶여 있어서 ‘나아지겠지’만 믿고 석 달 동안이나  통증을 참으며 죽과 수프로 견뎌왔다고 했다. 직장과 가정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내색 않고 참고 또 참은 것이다. 위험한 수술을 목전에 두고 사후의 일이 걱정돼 아비를 불렀으니 황소 만큼이나 참는데 이골이 난 게 아닌가.

수술은 두 시간 반이나 걸렸다. 수술실에 들어갈 수가 없는 아비는 대기실에서 안절부절 일어났다 앉았다를 거듭했다. 책이 머리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간호사들이 지나가면 목을 빼고 소식을 기다렸다. 병원 옥상에 다른 병원으로 호송할 응급 헬기를 대기시켜 놓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드디어 간호사가 치료실 안으로 보호자를 불렀다. 딸은 스무 개가 넘을 치료실 중 하나의 조그만 회복실 안에 혼자 덩그러니 누워있었다. 의사도 간호사도 보이지 않았다. 링거 주사를 꽂고 검정색 평상복 차림으로 옆으로 누워있는 모양이 마치 황야에 외롭게 버려진 커다란 고체 같았다. 남편은 시카고에 출장 중이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수업 중인 시간이었다.

딸은 아비를 보자 울컥 울음을 터트렸다. 눈물도 연신 닦아냈다. 좀처럼 보이지 않던 나약한 모습이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왜 그러니?”라고 묻는 아비와 말을 못 잇는 딸은 손을 부비고 이마를 마주 대며 체언(Body Language)으로 서로를 달랬다. 

곧 이어서 들어온 의사와 간호사는 수술이 잘 되었다고 환자와 보호자를 위로했다.  다만 최종적으로는 랩(Laboratory)에 의뢰한 검사 결과를 기다려 보자고 여운을 남겼다. 우리는 서로 기대며 비실비실 느리게 약국으로 가서 항생제와 소염제 등 처방약을 사가지고 딸네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안착한 딸에게서 깊은 한숨이 배어나오고, 그 한숨을 감추는 시선에는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아비는 딸을 영영 잃을 뻔 했다. 며칠 만 더 늦었으면 턱뼈는 완전히 내려앉았을 것이고, 그것은 곧 치명적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세균은 뇌로도 올라가 뇌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지경이었다. 다행히 낭떨어지 바로 앞에서 병균의 총공세를 차단하고, 오염된 뼈의 부분은 박박 깎아내고 긁어냈다. 남은 턱뼈에 상하좌우로 4개의 못을 박고, 큼지막한 금속 지지대를 턱 아래에 댔다. 헬기는 턱이 내려앉는 최악의 경우 다른 분야의 전문병원으로 호송하려고 대비했던 것이다. 

수술 후 매일 통원치료를 받는데 경과가 좋아서 2주일 만에 못은 제거할 예정이다. 타이타늄 지지대는 떼지 않고 평생 함께 데리고 살아야 하며, 병원도 이웃처럼 드나들어야 한다. 뼈는 재생된다지만, 3~5개월은 죽과 수프로 지내야 한다니 몸은 얼마나 상할지 모르겠다.

아비는 저간의 사정을 묻는 과정에서 혹 병원 측의 실수가 없었는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딸은 몇 번이고 수술 중에 그런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의사의 소견을 지지하며 의사를 신뢰했다. 출장에서 돌아온 사위가 치과 전문의인 친구에게 문의해도 대답은 같은 것이었다. ‘딸의 담당 의사가 미국에서  유명한 구강 전문의며, 그의 진료는 신뢰할 수 있고, 어려운 수술을 받을 때 그 의사를 만난 게 다행이다. 구강의 깊은 혹을 제거하는 수술에서는 턱뼈의 손상 가능성이 낮지 않은데 수술 후에  추적 치료가 느슨했던 점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아비는 며칠 동안 밤잠을 설쳤다. 딸이 살아온 삶의 궤적이 자꾸 반추되어서다. 어릴 때부터 역마살이 낀 부모를 따라 여기저기, 해외에까지 옮겨다니면서 겪은 고초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아비의 삶이 들씌운 또다른 형극이었다는 생각에 미치자 가슴이 무지근하게 저려왔다. 짜증 한 번 옹골지게 냈더라도 이렇게 속이 쓰리지 않겠다 싶었다. 그 어리던 것이 학교에서, 사회에서 어떻게 시달리며 성장했을까 하며 떠올린  고뇌의 편린 하나하나가 아리고도 귀하게 다가왔다. 무슨 정령이 씌워져 저리 외로운 성정을 갖게 됐을까? 상대를 배려하면서 스스로 참고, 묵묵히 매진하며 사는 삶의 원형질은 어느 여신이 던져준 방향(芳香)일까? 동양문화권에서일까, 서양문화권에서일까? 두 가지 문화에서 추출한 에스프리의 배합일까? 아마도 바다의 이쪽 저쪽을 옮겨가며 살면서 체득한 삶의 지혜일 터이고, 풍진세상을 살아가는 묘약일 것이다.   

아비는 부끄럽다. 자식에게 살아가는 방법을 뒤늦게 배워야겠다는 뉘우침이 너무 버거워서다. 그래, 아비보다 나아야 자식이지. 그걸로 효도는 마감이다.

오늘 전화에서 흘러나오는 딸의 목소리가 매우 밝고 상기돼 있다. “아빠, 저 이제 괜찮대요. 의사가 모든 게 잘 됐대요. 랩의 검사 결과도 깨끗하대요. 저 정말 죽는 줄 알었어요. 오늘 다시 살아난 느낌이에요.”  “그래? 오늘이 며칠이냐? 오늘이 내 딸의 새 생일이구나!”

송장길(언론인·수필가) womaneconomy@seoul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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